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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4 21:22 수정 : 2009.09.14 22:2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 한-노르웨이 수교 50돌 기념으로 오슬로를 찾은 서울시 무용단의 공연을 봤다. 가야금 음악을 숨죽여 듣는 노르웨이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통상 “우리 전통”이라 일컬어지는 국악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회성 이벤트는 - 외국에서 “한국”을 가르치면서 밥을 벌어 사는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반갑지만 - 과연 “한국 알리기”에 크게 기여할 것인가?

문화행사로만 한국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추진이 쉬운 단발적 이벤트에 지나치게 기대는 한국 정부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장기적 “나라 이미지 제고” 방안들을 듣노라면 이 정권이 모종의 근본적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컨대 정부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와 중국의 전례를 그대로 따라 각국에 “세종학당”을 세워 한국어를 보급하겠다고 한다. 물론 오슬로에 “세종학당”이 세워진다면 필자부터 경사라고 기뻐하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갑자기 외국인 사이에서 퍼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뿐이다.

정부는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600만명을 넘는다”고 보고 이들의 한국어 학습을 체계화한다면 한국 문화까지 외국에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실제로 해외 한국어 학습자들의 절반 이상은 그렇잖아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교민, 동포 자녀들이다. 아무리 집중 지원한다 해도 한국과 “혈연”이 없는 외국인 사이에서 한국어 수요는 한국어의 경제적 가치에 정비례할 것이고, 그리하여 늘 제한적일 뿐이다. 태권도 사범까지 파견하겠다고 하지만, 해외 태권도 학습자의 절대다수는 한국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 한국의 국위선양이 아니라, 본인들의 건강을 위해 배우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와 무관한 다수의 일반인 사이에서 그 국가의 이미지는 뉴스를 통해서 비치는 그 국가의 대표적 정책에 좌우된다. 서울에 노르웨이어 학당은 없어도 한국에서 노르웨이 이미지가 좋은 편에 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30년대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 좋은 결과를 낸 복지정책에 그만큼 세계인들이 호감을 나타낸다.

신장에서의 이슬람계 주민에 대한 박해 등 수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인도네시아나 이집트와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마저도 중국에 호감을 갖는 이들이 늘 50%를 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을 밥 먹듯이 해온 미국과 대조적으로 1979년 이후 전쟁을 삼가해온 중국의 평화 지향적 외교정책이 호감을 끈 것으로 이해된다.

노르웨이에서 한국에 대한 호의적 관심이 일시적으로 솟아오른 것은 고 김대중 선생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전후한 햇볕정책 가동의 시기였다. 만약 지금의 한국 정부가 남북 공동군축에 앞장서서, 특히 북한 경제를 짓눌러 민중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되는 북한의 군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면 한국어나 태권도를 배울 여력이 없는 수많은 노르웨이인들도 한국에 커다란 호감을 갖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8월15일 대통령 경축사를 통한 공동군축 제의를 뒷받침할 만한 남북 신뢰 구축 정책을 펴지 않고 있을뿐더러 지난 10년간 쌓인 신뢰를 깨뜨리는 데만 열중해왔다. 아무리 문화외교에 돈을 많이 들여도 구두선 이상의 평화정책을 추진할 줄 모르는 정권은 나라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제고할 가능성이 없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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