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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9 22:31 수정 : 2009.11.09 22:31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 과거를 반복하게끔 돼 있다.” 진부하다 싶은 산타야나(1863~1952)라는 철학자의 명언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아프간 재파병 방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오로지 이 말만은 떠올랐다. 이 정권의 중요 인물 중에서 역사 전공자는 없겠지만, 자국 국민을 사지로 보내기 전에 현지의 역사부터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살펴보고 지금 미 제국이 벌이는 전쟁이 최소한의 명분과 승산이라도 있는지 판단해 보는 것은 정부로서 직무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직무가 유기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제국들의 무덤, 아프간.” 역시 진부하다 싶은 이야기지만 고대사에서 소그디아나와 박트리아로 명명됐던 이 땅의 과거를 압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정복하기가 힘들고, 정복해도 곧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는 땅이 오늘날의 아프간이었다. 이란, 메소포타미아를 거의 1년 만에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오늘의 아프간 땅을 정복하느라 3년이나 고전하면서 “이 나라의 모든 사나이들은 다 알렉산드로스들”이라고 적의 용맹을 극찬할 정도였다. 7세기 중반에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거의 전체를 정복한 아랍인들은, 아프간의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하지 못하고 말았다. 1839~1842년에 인도의 지배자들이었던 영국인들은 최초의 아프간 침공(“제1차 아프간 전쟁”)을 벌였지만 2만명 이상의 전몰자를 내고 완패하고 말았다. 19세기를 통틀어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이렇게 보기 좋게 아시아의 “원주민”으로부터 반격을 받은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제2차 아프간 침공(1878~1880년)의 결과로 카불에 세워진 친영 정권도 채 40년이 지나지 않은 채 무너지고 말았다. 1979~1989년, 소련의 십만대군이 “현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현지 정권을 뒷받침하면서 잔혹한 “반군 소탕 작전”을 벌였지만 다 허사였다. 이미 1985년부터 물밑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 소련이 도시들을 장악해도 전체 영토의 70~75%는 늘 파슈툰족 등 부족들의 이슬람주의적 민병대, 즉 “반군”의 차지였다. 외세 축출을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다 바칠 각오가 돼 있는 토착 민병대들이 지금도 대체로 이 정도의 영토를 실제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역사의 논리를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제국의 무한한 오만이라고나 할까? 2001년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하여 아프간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다 안정적 괴뢰정권을 세워 대러시아, 대중국 포위작전과 중앙아시아 유전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려 했다. 아프간을 장악한 자가 유라시아 중심부 장악을 도모할 수 있다는 계산이야 맞았겠지만 미국이 외면한 것은 아프간 주민 대다수의 민심이었다. “원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일반적 처사지만 아프간의 역사가 증명하듯, 아프간인들의 의지를 무시한 침략자가 그 침략에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결국, 아프간의 지형을 손바닥처럼 알고 다수의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신출귀몰하면서 침략자들을 계속 괴롭힐 수 있는 민병대들과의 승산 없는 소모전에 지쳐 미국 등 서방세력들이 조만간 아프간을 빠져나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패배할 수밖에 없고 이미 패배로 기울어져 가는 제국주의 침략에 한국 국민들을 조공품 삼아 보내듯이 파견한다는 것이 과연 “중도 실용”인가? 아프간 침략을 시도했다 좌절한 대영제국과 소련 등처럼 미국도 무조건 맹종해야 하는 “영원한 제국”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정부가 이해했으면 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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