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7 20:03
수정 : 2011.03.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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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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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귀환”이라고나 할까? 아프간 침략 10년 만에, 이라크 침략 8년 만에, 서방 열강이 다시 한번 이슬람권 국가, 리비아를 침공했다. 이라크처럼 유전이 많은, 아프간처럼 지정학적으로 요충지를 차지하는 나라를 공습하고, 나아가서 그 내전에 개입해 졸지에 우군이 된 “반군”으로 하여금 리비아 전역을 통제하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그 지원은 지상군 투입과 리비아 점령의 시도로 이어질는지 아직 미지수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 군사작전에는 그 내재적 논리가 있는 것이고, 공습만으로는 카다피 정권 제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공습으로 죽고 다치는 민간인의 “보호”가 아닌, 카다피 정권의 제거야말로 이 작전의 실질적 목표라는 사실은 이미 불을 보듯 명백하다.
물론 카다피는 리비아 전체를 카다피가의 족벌기업으로 만들어버린 흉악한 독재자임에 틀림없다. 흉악한 독재자, 흉악한 광신도 집단이라는 수식어를, 각각 이라크의 후세인과 아프간의 탈레반에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방의 아프간·이라크 침략이 오로지 흉악한 통치집단으로부터의 민간인 보호를 목적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리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서방이 진정으로 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원했다면, 평화적 시위를 무력으로 짓밟아 수백명의 재야인사를 죽이거나 불법 납치·감금·학대한 바레인이나 그 후견인 격의 사우디 왕국부터 제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비폭력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방관하는 열강이 다른 쪽에서 내전에 개입했다면 여기엔 “민주화”와 무관한 저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전 장악이 목표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만도 하지만, 이번 사태를 그렇게 단순하게만 보기도 힘들다. 물론 서방이 지원의 대가로 “반군”이 집권한 뒤에 유전개발 이권을 더 많이 나누어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겠지만, 카다피 정권만 해도 열강의 석유업체에 전혀 비협조적이지 않았다.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의 석유회사들은 벌써 몇년 동안 “흉악한 독재자”와 공생하면서 리비아 석유산업에 참여해왔다. 리비아에서 유전이 없었다면 작금과 같은 서방의 적극 개입도 없었겠지만, 이 개입을 유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위주의 아프간·이라크 침략과 달리 이번 무력간섭은 프랑스와 영국의 보수정권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세계공황으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과정에서 우파정권이 정치적 난관에 봉착했다. 한 예로 2014년까지 고등교육 예산을 40% 삭감하겠다는 정권에 맞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시위와 파업으로 대응하고 있다. 프랑스의 우파정권도 지속적으로 학생·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왔다. 이와 같은 유럽 우파정권들의 정치적인 난맥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주도하는 리비아 공습은 어떤 면에서 국내문제에서 국외문제로 사회의 관심을 돌리고, “독재자 제거” 명분으로 인기를 노려보려는 정치공학적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크게 봐서는 남한의 보수정권들이 초강경 대북정책으로 북한을 먼저 자극한 뒤에 북한의 강경대응을 “도발”로 규정하고 반북주의적 광풍을 일으키면서 표심을 잡아보려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것이다.
이와 동시에 가장 근원적으로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비구미권 국가들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오늘날 구미권 열강들에 그들이 아직도 보유한 가장 중요한 이점, 즉 지구상 그 누구도 맞대응하기 어려운 무력을 크게 과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칼로 얻은 패권을 유지하려는 저들은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는 성경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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