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7 19:14
수정 : 2011.07.0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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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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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 전에 갈라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통합의 길을 모색한다. 이 모색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분당 당시에 핵심적 이유 중의 하나는 북한 정권을 보는 시각의 차이였지만, 지난 3년 동안 이명박 정권의 초강경 반통일 정책들이 이 부분에 대한 진보 안에서의 의견 차이를 역설적으로 일부분 해소시킨 듯하다. 북한 정권을 ‘반미투쟁의 전위’로 보든 해방적 내용이 태부족한 ‘한국화된 스탈린주의’로 보든 진보주의자인 이상 대립이 아닌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할 것이고, 이명박 정권의 ‘미친 반북 정책’에 같은 강도로 반대할 것이다. 북한 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보든 간에, 실천의 차원에서는 어차피 군축과 신뢰 축적, 평화체제 구축, 북한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조건하의 경협 등의 정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이 점차 위기로 진입하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는 진보는 다분히 ‘이론적인’ 대북관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회변혁을 위해 같이 일할 줄 알아야 한다.
60여년간 분단의 아쉬운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떤 대북관을 가지든 간에 이는 북한 사회에 그 어떤 현실적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통일 정책에 비교적으로 적극적일 듯한 제도권 야당에 기대를 거는 것 같은 북한 당국의 남한 정치에 대한 시각이 남한 정치판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보통합 문제에서 대북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특히 민주노동당 당국자 사이에서 많이 퍼진 부르주아 여당들과의 연대에 대한 부풀린 기대의 문제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들이 지금 추구하는 듯한 야권 연대, 즉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 전략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진정한 (즉, 계급적) 진보의 죽음을 뜻한다. 지배블록의 일부분인 제도권 자유주의자들과 야합할 경우에는 진보가 진보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한국 진보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소수 수출 대기업과 토건업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형 모델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없어 늘 주변을 돌게 되는, 사실상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비주류들이다. 어려운 강의 노동에 월평균 수입이 40만원에(!) 불과한데다 미래는커녕 다음 학기 강의 일정도 불투명한 대학 시간강사, 미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고 대다수가 아르바이트 전선에 내몰리고 거기에서 약 40% 정도가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받는 등 살인적 착취를 겪는 대학생, 현존 체제에서 인간다운 일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미미한 청년 실업자와 취업 대기자, 대형 마트들의 상권 침범으로 점차 망해가는 영세상인, 3대 보험 가입률이 30~40%에 불과해 임금착취와 고용불안에다가 건강·노후·실업불안에 늘 노출돼 있는 수백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앞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를, 바로 이들이 이끌어 가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이 될 것이 뻔한 청년들, 영세민, ‘주변부 인텔리’ 등의 정당이 될 통합진보정당이 만약 처음부터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야합부터 선언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과연 대학생들은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적 정권 아래서 등록금이 매년 6~7%의 미친 속도로 인상됐다는 걸 이미 잊은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부를 만한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직법 등 반노동 정책을 이미 잊은 것인가? ‘주변부 인텔리’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에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비정규직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의 대상자에서마저도 제외됐다는 걸 이미 잊은 것인가? 집권 10년 동안 한국 민중 삶의 터전을 거의 파괴한 신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당 세력들과 진보진영이 연합을 한다면 이는 민중에 대한 최악의 배신에 해당될 것이다. 과연 그런 ‘진보’를 민중이 지지할 가치라도 있을 것인가? 진보대연합이 긍정적 의미를 가지자면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야합이 아니라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적 조직화·세력화야말로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야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꿈을 언젠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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