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15 19:34
수정 : 2012.03.16 11:21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
요즘 며칠간 우리 여론공간은 ‘해적 정국’을 맞이했다. ‘고대녀’ 김지윤씨가 해군이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표현하자 해군과 일각의 극우 정치인 등이 그녀를 고소하느라고 난리를 떨고 있다. 그 이유는, “해적”이라는 표현이 “해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해군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시민 패는 해군은 해적 맞다”고 하여 김씨의 편을 들어준 작가 공지영도 극우주의자들의 공격을 감내해야 했다. 군사화된 남성으로서, 군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을 “군대에 가지 않는”, 한참 연하의 여자로부터 듣는 것이 고역인 모양이다. 한데, 지금 김씨를 고소하는 이들은 마초 기질을 일시적으로나마 초월해서 한번 성찰이라도 시도해보기 바란다. ‘모욕’이 아닌 ‘비유’로서의 “해적”은, 어쩌면 우리가 맞고 있는 상황의 총체적인 본질을 그대로 지칭하는 문학적인 표현으로서 적절하지 않겠는가?
국가도, 해적 등 우리가 통상 ‘불법’이라고 아는 민간 무장집단도 기본적으로 폭력기구들이다. ‘국가’의 사회과학적인 정의의 핵심은, ‘유일하게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 정도다. 그러면 국가는 ‘합법’, 해적은 ‘불법’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적과 달리 국가는 적어도 원칙상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공공성이 있다는 점이 주된 차이점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궁극적으로 지배층의 계급적 이익에 맞추어서 정책을 입안·추진하지만, 근대적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적어도 다수가 인정하는 공익과의 가시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제주해군기지 사업 같은 경우에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가 통념적으로 인정하는 공익을 노골적으로 해친다. 첫째,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와 불과 490㎞ 거리에 있는 지점에서 미군이 쓰지 않을 보장도 없는 해군기지를 신설한다는 것이 중국 군부를 자극한다는 점은 불 보듯 뻔한 것이고, 중국 군비 확충에 영향을 미칠 것도 거의 확실하다. 그만큼 한국 군부도 군비를 더욱더 늘릴 명분을 얻을 것이다. 소모적인 군비경쟁의 가속화는, 과연 한·중 양쪽 민중의 공익인가? 둘째, 자연보호구역과 직선 3㎞ 거리에 있는,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자연경관을 폭파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명백한 범죄행위다. 셋째, 반대하는 주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그 농토를 강제수용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공익을 치명적으로 해치는 공권력 남용에 해당된다. 한마디로 결론 내리자면, 김지윤씨를 공격하기 전에 강정마을에서 노출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수준이 과연 ‘해적’, 즉 공익성이 결여된 폭력집단과 얼마나 다른지, 국가권력자와 군 수뇌부부터 자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중 민중의 군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자연과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이번 ‘강정마을 사태’에서는, 동시에 희망적인 점도 있다. 사실, 이번에는 우리 시민사회가 최초로 군부의 안보주의 논리와 정면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분단 현실로 인해서 ‘안보’가 국시 이상의 국시, 절대적 가치가 돼버린 상황에서는, 병영국가 남한의 시민운동은 비록 군사독재와는 투쟁해도 오랫동안 안보주의 논리와 직접 투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범죄적인 베트남 파병을 함석헌·리영희 선생 등 일부 지사들이 반대해도 야당은 소리 높여 반대하지 못했다. 1970~80년대에 대학 교련수업 반대운동과 전방입소 반대투쟁 등이 있었지만 미국의 패권전략과 민중 억압의 도구가 된 군대에 아예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운동가는 없었다. 운동권에서조차도 ‘국가안보는 신성하다’는 명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비종교적 병역거부자 운동은 본격화됐지만, 아직도 대체복무제도도 쟁취하지 못할 정도로 안보주의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그 운동의 세력은 약하다. 그러나 이번에 강정마을 지킴이들은 한반도와 그 주변 민중들의 공익을 해치려는 안보주의 논리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 머지않아 우리가 병영국가의 해체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교수가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게 돼 이번 칼럼을 끝으로 필진에서 제외됩니다. 지난 10년 가까이 박 교수의 칼럼을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박노자 교수의 필진 글방입니다.
http://wnetwork.hani.co.kr/gategateparagate/
※박노자 칼럼 기획연재 가기
http://www.hani.co.kr/arti/SERIES/68
■
[박노자 칼럼] 우리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2011.1.30
■
[박노자 칼럼] 리비아 공습의 진정한 이유 2011.3.27
■
[박노자 칼럼] 광풍 속의 대한민국 2011.4.24
■
[박노자 칼럼] 파시스트 살인마가 한국을 좋아한 까닭 2011.8.4
■
[박노자 칼럼] “상아탑 노예들”의 해방의 길 2010.11.7
■
[박노자 칼럼] 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2012.2.21
■
[박노자 칼럼] 사람을 죽이는 사회 2011.6.9
■
[박노자 칼럼] 한국 자본의 ‘통념’, 인종주의 2012.1.31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