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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2 19:05 수정 : 2006.06.16 22:58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칼럼

최근 오슬로에서는 오슬로대 일본학과 여교수의 아들이 마약 중독자로 추정되는 사람에 의해 사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필자가 놀란 것은 박사 부모를 둔 그 아들이 고교 때 공업 교육을 받아 졸업 뒤 계속 배관공으로 일해왔다는 것이다. 배관공으로 일하는 것이 교수보다 벌이가 더 좋고 고교생에게 “대학가라”는 압력도 없는 노르웨이에서 이색적인 일도 아니지만, 노동자 차별이 심했던 ‘간판뿐인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랐다가 ‘공돌이’와 ‘먹물’이 반상 차별과 같은 차별을 받는 한국에서 살았던 필자로서는 사실 충격적이었다. “손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가장 존경스럽다”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듣곤 했음에도 막상 동료의 아들이 배관공으로 일했다는 것이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도 계급사회의 왜곡된 ‘상식’에 오염된 사람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데, 필자만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그 여교수가 일본에 갔을 때 “내 아들은 배관공 일을 공부보다 더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일본의 보수적 교수는 물론,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까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했다. 동아시아 사회의 막강한 노동차별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진보’라는 것이 무력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만민평등의 근대적 세상에서 노동자를 ‘실패자’로 다루고 학력에 의한 ‘출세’를 절대시하는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내면화되는 것인가? 이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배경인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과 높은 산재율, 노동의 급속한 비정규화와 궁극적 ‘서민 신분’의 세습화 등은 우리를 겁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노동자를 ‘저주받은 자’로 만든 것은 비참한 현실적 문제 외에도 학교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담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툭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교과서도 한번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신라사를 뱄 때 김춘추 김유신 같은 정치꾼의 이름은 술술 외워도 ‘민족의 자랑’인 에밀레종의 주조를 총관했던 8세기 후반의 뛰어난 주종(鑄鐘) 기술자 대(大)박사 박종일의 이름 석자를 배운 사람이 있는가? 고대에 ‘박사’라는 말은 학자뿐만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뛰어난 장인도 지칭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은가?

백제가 일본에 불교문화를 전수했다는 것은 개화기부터 한국 민족주의의 자랑거리가 되어 교과서의 단골메뉴이지만, 계백 장군 등 백제 정치인의 이름을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6세기 후반에 일본에 건너가 사찰 건축의 기반을 닦은 백제의 와박사(瓦博士:기와 제조자) 양귀문과 석마제미가 누군지는 도저히 모르는 것이다. 백제 정치사 대략을 기억하고 있어도 백제의 기와·벽돌 제조법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관심조차 없다. 노동의 역사가 아닌 지배·살육의 역사를 범기 때문이다.

근대사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한강의 기적’의 바탕을 마련한 것은 60년대의 직물 수출이었는데, 대원군과 김옥균은 알아도 100여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에서 근대적 염직 기술을 버 온 안형중과 박정선 같은 기술자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도 역사 왜곡이 아닌가?

우리가 북유럽만큼이나 노동자들을 존중하고 바르게 대우해주는 사회를 만들자면 우리의 역사 이해 역시 노동과 농민 수공업자 기술자 노동자, 그리고 피지배민의 문화·투쟁의 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부르주아 정객들이 들먹이는 소수를 위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다수를 위한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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