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3 17:58
수정 : 2006.06.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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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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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한국에 와서 필자가 노르웨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강의는 영어로 하지요?”이다. 노르웨이 하면 ‘선진국’ 이미지가 떠오르고 ‘선진국’이라면 영어를 매사에 쓸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들으면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필자가 교편을 잡고 있는 대학의 원칙은 학생들이 모국어로 수업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영어영문 전공과목을 제외한 일반 대학생을 위한 영어교양 과목 등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영어로 개설돼 있는 과목은 전체의 10% 이하이며, 일반과목 강의를 영어로 전환해 주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외국인 교수 임용 때에도 같은 기회를 주지만 이들은 2~3년 만에 노르웨이어로 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영어권 대학에 가서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만큼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무얼까? 고교까지의 공교육 속에서 영어 교육이 너무나 잘 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박사학위 논문들의 약 80%가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로 쓰이는 등 노르웨이는 학술 언어로서 자국어의 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술적 주변국이랄 수 있는 노르웨이마저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자국어로 돼 있는데, 독립적 학술 체계와 ‘언어적 보수성’의 경향까지 띠는 프랑스·독일·이태리 등의 유럽국가들의 대학교에서 영어 상용화는 상상이나 해볼 수 있는가?
선진국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고교과정까지 사교육비 한푼 들일 일 없이 영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할 기회를 주고, 그 이후나 일반인에게는 고급 지식을 쉽게 전달할 수 있게 자국어로 된 독립적 지식 체계의 성립과 발전에 공을 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영어 능력을 전수해야 했을 초·중·고 과정에서 학생들은 입시라는 망령에 쫓겨 신음하고 공교육이 황폐화되는 가운데, 천문학적 과외비로 명문대학에 들어간 소수의 학생들이 영어강의 광풍에 노출된다. 경영, 공학의 개별 학과들이나 단과대학들이 “한국말을 안쓰겠다”고 선언하고 한 대학 전체는 2010년까지 수업의 절반을 영어로 하겠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게 해서 ‘선진화’되겠다는 건가? 그것이 ‘선진화’일까? 그렇다면, 영어강의 차원을 넘어 아예 영어가 지배계급의 언어가 돼버린 말레이시아, 필리핀, 파키스탄, 잠비아, 케냐 등과 같은 미국과 영국의 옛 식민지들을 우리는 우러러 봐야 할 것이다. 우리와 그들의 종이 한 장 차이라면, 그들 나라의 매판 엘리트들이 탈식민화 이후로 영어능력이라는 잣대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경계선을 계속 그어온 반면, 우리의 대미 예속 엘리트들은 개발 독재 단계에서 언어 민족주의를 대중 동원의 도구로 썼다가 신자유주의 단계에 접어들어 ‘영원한 평민’으로 남아 있을 대다수의 시민을 ‘지배자 언어 구사’란 잣대를 이용하여 차별하는 정도의 차이이다.
필자는 민족주의자도 아니며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에 비해 특별한 우수성을 보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머나먼 미래에 세계 전체가 하나의 사회주의적 사회를 이룬다면 만국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도 또한 즐겁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언어가 지식사회에서 시민권을 잃어가는 것과 패권 제국의 언어가 사회귀족 특권의 상징으로 부상하는 것은 사회의 대다수 피지배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이는 결코 ‘선진화’가 아니며, 사회 양극화의 언어적 표현이자 동아시아 시대에 역류하는 대미 예속의 강화일 뿐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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