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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3 19:40 수정 : 2015.05.20 14:50

조원희 영화감독

조원희의 영화 그리고 농담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파이>로 데뷔했고 <레퀴엠>, <더 레슬러>, <블랙스완>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는, 어떻게 보면 예술영화전용관에 어울리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랬던 아로노프스키가 이번에는 1억3000만달러(1391억원)의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성경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도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 만한 ‘노아’에 대한 영화다.

분명한 건 어떤 감독들이 이 프로젝트를 맡았으면 노아의 신앙과 가족애가 살아 숨쉬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동물들의 재롱잔치가 펼쳐지며 선과 악이 분명하고 마지막엔 찬란한 태양이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낯선 모습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냈다. 노아는 인간을 멸해야 한다는 신의 계시를 받아 끊임없이 고민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 심판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도 포함돼야 하느냐에 대한 갈등이다. 멸절해야 할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폭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보다는 그저 낙원을 파괴하는 육식 동물처럼 그려지고 있다. 노아의 종교적 신념도 성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강박증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 선이 굵은 캐릭터 심리를 기저로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전쟁물의 분위기와 <북두신권> 같은 세기말 멸망 액션물, 그리고 <샤이닝> 같은 한정 공간 심리 스릴러까지의 나선형 진화를 이루는 블록버스터라면 이것은 분명히 어떤 이들은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해 쩔쩔매다 최악의 영화로 규정할 수 있는 ‘논쟁적 작품’일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라는 것은 어차피 한꺼번에 많은 관객이 몰리는 산업적인 특성을 가졌다. 아로노프스키와 같은 고집스러운 감독들은 때로 그 수많은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의도를 버린다. 장르 전반을 이해하고 캐릭터들의 심리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읽어내는 관객들에게는 만족을,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그런 영화들을 싫어하는 신념을 지닌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줘 두 집단 간에 폭풍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아로노프스키는 예술적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 위에 떠 있는 하나의 ‘떡밥’이다. 일단 덥석 물어 봐야만 이것이 낚시인지, 아니면 일용할 양식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가 관객으로부터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면, <노아>의 경우는 그 반대다. <노아>는 보는 사람이 어떤 종류의 관객인지를 가려내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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