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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5 21:08 수정 : 2015.11.06 10:34

[백민석의 리플릿] (16) 특별편 일본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에 전시된 귀스타브 도레의 <라 시에스타, 메모리 오브 스페인>(La Siesta, Memory of Spain·1868년). 동요하지 않는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가 작품의 중심이 되어 감상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종교적 건축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인적 없는 예배당의 서늘한 고요를 느낄 때의 분위기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바깥에 나와 있습니다. 예전 에세이에서 “바깥을 향해 읽어라”라고 말해놓고는 아예 바깥으로 나온 셈입니다. 당연히, 바깥에 있다고 해서 방금 떠나온 우리 사회가 더 잘 보인다든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든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관광명소를 쫓아다니느라 몸은 피곤하고, 어째서 일본보다 한국에서 먹던 일본 음식이 더 맛있는지 알 수가 없고, 전철을 탈 때면 매번 혼란스럽고 하루에 한번은 길을 잃습니다. 뭘 생각할 여유가 없지요.

일본은 제게 처음입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일본이 초행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이웃나라니 흥미가 덜했고, 문화적으로도 거리가 가까워서 굳이 직접 가보아야 할 필요가 덜했습니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방송에서, 책에서, 음악에서, 영화에서, 우리 언어로 더빙이 되거나 우리 풍토에 맞게 개작된 형태로 친숙하게 접해왔습니다. 저는 우리의 대중문화 산업이 아직 빈약했던 때, 그래서 대중문화 상품의 많은 양을 일본에서 수입해오던 때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한때 일본의 대중문화를 우리의 것보다 더 많이, 더 친숙하게 소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비행기 티켓 값이 부담스런 가난한 작가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하나 있습니다. 일본과의 역사적으로 불편한 감정입니다. 저는 아직 반미 반일 감정이 팽배하던 때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즐기면서도, 마음 한편의 자세는 늘 비판적이었습니다.

하나의 대상에 친숙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것. 일본이라는 하나의 나라에 문화적인 친숙함과 역사적인 불편함이 공존하는 것. 이런 걸 뭐라 하나요, 마음의 이율배반이라고 하나요. 그래서 식당에서 만난 일본인이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에서 십년 동안 새마을운동 관련된 일을 했다”고 했을 때 저는 잘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포스터.
문학에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얘기할 때입니다. 지금처럼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친일의 문제가 엮인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하루키의 소설을 펼치기 전에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루키의 소설은 단순한 문화상품이라고 보기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서 좋든 싫든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 소설 창작 강의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다룹니다.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저는 “취향에는 국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간혹 덧붙입니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취향도 국적을 묻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를 이성적으로 파악하려 할 때, 문화와 역사가 따로 놀지 않듯, 그 둘을 분리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취향엔 국적이 없지만, 역사에는 국적이 있습니다.

미술에서는 어떨까요. 관광객으로 며칠 다니러 왔으니 미술관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만 몇 군데 들렀습니다. 제 짧은 식견에, 대중문화와는 달리 우리의 현대미술은 일본의 영향을 그다지 받은 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미술의 중심이 서양이다 보니 일본의 영향을 받을 이유가 많지 않았고, 걸어온 길도 서로 다릅니다. 특히 1980~90년대 우리 미술의 중요한 흐름이었던 민중미술은 눈에 띄게 독특한 화풍, 스타일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민중미술을 하던 때 일본은 무슨 미술을 하고 있었나요.

‘미술’이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홍선표의 <한국 근대미술사>를 보면, ‘미술’은 “공업예술 또는 공예미술이란 의미의 독일어 ‘쿤스트게베르베’(Kunstgewerbe)와 조형미술이란 뜻을 지닌 ‘빌덴데쿤스트’(Bildende kunst)를 번역하기 위해 1872년 근대 일본의 메이지 정부에서 만든 조어”라고 합니다. 일본에도 미술이란 말은 없었습니다. 이 일본에서 만든 조어가 우리나라에 “1881년 무렵 처음 등장하여 1900년대를 통해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에 출품된 강애란의 '응답하라'. 아시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설치미술.
미술이란 말은 현재 하나의 제도이자, 그 제도 안에 모인 여러 장르를 일컫는 통칭으로 쓰입니다. 회화, 조각, 공예, 사진,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이름도 낯선 대지미술과 장소 특정적 미술까지, 닮은 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온갖 장르가 미술이라는 통칭 아래, 미술이라는 제도 아래 모입니다.

둘러본 미술관 중 도쿄도미술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쿄도미술관은 지하 3층부터 지상 2층까지 많은 전시실이 있는 넓은 미술관입니다. 그중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는 모네의 전시 하나뿐이었고, 다른 12개 전시실은 모두 일반인들이 표도 팔고 안내도 하는 미술 동호회의 작품전이었습니다.

전시실에 붙은 명칭도 아예 ‘시티즌 갤러리’(Citizen’s Gallery·한국어 사이트엔 공모전시실로 번역돼 있음)였습니다. 애초부터 시민의 몫으로 할당된 전시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공립미술관에 일반시민을 위한 전시실이 따로, 그것도 다수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 신선했습니다. 우리의 국공립미술관과 비교를 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 문화와 다른 점을 말해두고 싶었습니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본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은 어수선한 초행길에 만난 잊지 못할 수확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림보다는 그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잘 차려입은 일본인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작품에서 열 발짝쯤 떨어져서 허리를 발코니 난간에 기대고 턱을 살짝 치켜든 게, 자세부터 표정까지 너무 진지해 보였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런 감상 태도를 갖는 일은 뜻밖에도 쉽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전시회 전체를 둘러보고 나오는 시간은 보통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작품 앞에서 취하는 진지한 자세와 표정은 몇 분이나 지속될 수 있나요.

저 역시 처음 만나는 도레라는 작가의 작품이 좋아서, 그 앞에 꽤 머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 일본인이 감상을 방해받아 살짝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저는 다른 전시실을 둘러보다 한참 후에 다시 도레의 작품 앞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다른 감상자가 아까의 감상자와 똑같은 진지한 자세와 표정으로 도레의 작품 앞에 서 있더군요. 호기심에서 지켜보는 제가 못 견딜 만큼 한참을.

그 도레의 작품이 <라 시에스타, 메모리 오브 스페인>(La Siesta, Memory of Spain·1868년)입니다. 가운데 한쪽 팔을 올린 금발 어린이가 눈길을 끕니다. 그렇다고 어린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 아니죠. 측광이 가장 선명하게 비추고 있는 인물은 오른편의 남성입니다. 금발의 어린이는 밝되 가장 밝지도, 그렇다고 주변의 어둠에 함몰되지도 않고 살짝 두드러진 상태로 감상자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동요하지 않는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는 작품의 중심이 되어 감상자의 눈길을 잡아끕니다. 종교적 건축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인적 없는 예배당의 서늘한 고요를 느낄 때의 그런 분위기입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고요하지만 밀어낼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를 지닌 작품도 작품이지만 감상의 태도도 멋졌습니다. 배울 만한 태도라는 생각입니다.

일본에 오기 며칠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은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전을 봤습니다. 그중 강애란 작가의 <응답하라>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시아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굴 내부에 참혹한 범죄의 증언과 다큐멘터리 영상, 사운드 들을 한곳에 모은” 설치작품입니다. 일본의 심각한 전쟁범죄인 위안부 문제가 역사의 자리에서 확장되어, 아시아 페미니즘 미술의 자리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백민석 소설가.
역사는 이처럼 교과서 같은 책 속이나 연구실 속에 고착되어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역사책에서 미술로, 영화로, 철학과 문학으로, 저잣거리의 너와 나로, 우리로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가며 해석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가두어둘 수도,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 기술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뺏은 승자의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누가 당신들이 이겼다고 합니까.

백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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