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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7 21:03 수정 : 2015.12.17 21:03

로베르토 파벨로의 1988년 드로잉 연작인 ‘생명의 조각들’(Vital Fragments).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인간의 일그러지고 변형된 신체와 동물의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대비되어 있는 작품이다.

[백민석의 리플릿]
(19) 특별편 쿠바①

쿠바의 산 프란시스코 파울라 마을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았던 저택이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이 핑카 비히아 저택은 세계 유일의 헤밍웨이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는 30년 가까이 쿠바에 살며 <무기여 잘 있거라>, <만류 속의 섬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같은 대표작들을 집필했고, <노인과 바다>를 써서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글만 쓴 것은 아닙니다. 낚싯배 필라 호를 타고 낚시를 다녔고,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해 거실에 걸어놓기도 했고, 여러 차례 열애와 결혼을 반복했으며, 정성스레 고양이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저택 정원에는 키우던 고양이 네 마리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어디선가, 쿠바가 아침나절에 글을 쓰기 가장 좋은 기후를 가진 나라라고 밝혔습니다. 저 역시 여기서 아침나절에 글을 씁니다만, 선선한 날씨 때문은 아닙니다. 헤밍웨이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에어컨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쿠바입니다. 쿠바는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중남미 섬나라입니다. 아직 우리와 외교관계도 맺지 않은 멀고 낯선 나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치 친숙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 영감이 바로 쿠바인입니다. 영감의 코히마르 마을에선 아직도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또 한편 체 게바라가 산악 게릴라 전투를 통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나라가 쿠바입니다. 쿠바의 어느 서점에 가나 그에 관한 책들을 볼 수 있고, 어느 거리에 가나 검은 윤곽선만으로 이뤄진 그의 초상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2>에는 쿠바 혁명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과 싸워 어느 정부가 이길 수 있겠냐고 묻던 알 파치노의 대사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독재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 쿠바인들입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나온 라틴 재즈는 쿠바의 거리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제 숙소 맞은편 식당에서는 쿠바 뮤지션들이 밤 열 시까지 재즈를 연주합니다. 또, 쿠바 야구와 시가의 명성은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합니다.

카리브 해의 붉은 진주, 쿠바
독재와 싸워서 이긴 사람들
미국 봉쇄에도 활기찬 분위기

천편일률적 미술과 거리 멀고
계급성·혁명 고취 의도도 없어
풍부한 다양성 위축되지 않아

이렇게 매력이 많은 나라인데도, 제가 트위터에 쿠바에 있다고 하니 쿠바는 폐쇄적인 나라인 줄 알았다는 답글이 달립니다. 북한의 부정적인 소식을 밤낮으로 접하는 우리니, 쿠바에 대해서도 북한과 비슷한 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쿠바는 북한보다는 우리와 더 많이 닮은 듯합니다. 생필품이 배급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관광객이 이곳에서 사회주의를 실감할 일은 없습니다.

경찰이 자주 눈에 띈다는 사실은, 우리처럼 치안 상태가 좋다는 의미이지 사회주의만의 특성은 아닙니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회주의의 특성이 아니라, 미국의 반세기에 걸친 경제봉쇄 정책 때문입니다. 한 달 전쯤 미국을 비난하는 문구가 쓰인 관광버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봉쇄는 비인도적이고, 쿠바의 생존권을 요구하고, 감금된 쿠바인들을 풀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들자 운전기사는 출발하려던 버스를 일부러 멈추고 사진을 찍게 해주었습니다.

미국의 압박을 반세기나 견디고도, 쿠바가 생기를 잃지 않고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미국과는 올해 수교를 맺어, 미국 대사관이 제 숙소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쿠바의 이웃인 멕시코와 아이티에 관해 어떤 외신이 주로 전해져왔는지 떠올려보면, 현재 쿠바 문화의 건전성 역시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말레콘 산책로의 으슥한 곳에는 마약중독자나 갱들이 아니라, 트럼펫을 든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열정적인 아베크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쿠바가 이웃나라들처럼 친미정책을 썼다면 현재의 풍경이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쿠바인들은 식민 지배와도, 독재와도 싸워 이겼고, 미국의 경제봉쇄와도 싸워 이긴 셈입니다.

쿠바의 시인이자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의 동상. 한쪽 팔로는 아이를 안고 있고, 다른 팔은 앞쪽 미국 대사관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다.
제 숙소 앞 광장에는 쿠바의 시인이자 독립운동의 영웅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한쪽 팔에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고, 다른 팔은 길게 뻗어 독립 쿠바의 미래를 가리키는 듯 저 앞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기막힌 우연인지, 현재 그 앞쪽에 미국 대사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마치 미국의 탐욕스러움을 지적하듯, 혹은 미국의 적대에도 굴하지 않는 자부심을 상징하듯, 호세 마르티의 팔은 꼿꼿이 미국 대사관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습니다.

쿠바의 미술은, 사회주의 미술 하면 떠오르는 천편일률적인 미술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이미 구소련과 중국의 과거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나라에서 미술이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미학적 통제 아래 놓여야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북한 김영철 작가의 1999년작 ‘천리마 선구자 진응원’.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북한 미술의 대규모 전시가 있었습니다. 같은 사회주의이지만 북한과 쿠바의 미술은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 김영철 작가의 1999년작 <천리마 선구자 진응원>은 북한 미술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노동자 영웅이고, 관람객의 감정을 고취시키게끔 캔버스의 중앙에 우뚝 선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영웅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풀어헤친 가슴과 걷어붙인 팔뚝은 노동자 계급의 힘과 건강함을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리처드 로티는 “마르크스주의가 국가 종교가 될 때” 그 나라 미술이 어떻게 되는지 나보코프의 소설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상은 기계로 재단한 고른 색의 블록이다. 뉘앙스는 금지되었으며, 간격은 봉쇄되었고, 굴곡은 모두 직선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시회에 나온 북한의 천편일률적인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미학적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예술정책을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해온 결과입니다.

쿠바 미술의 주인공은 노동자가 아닙니다. 영웅도 아니고, 캔버스의 가운데 자리를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관람객에게 계급성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창작되지도 않았고, 혁명 사상을 전하려는 의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베르토 파벨로의 1988년 드로잉 연작인 <생명의 조각들>(Vital Fragments)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인간의 일그러지고 변형된 신체와 동물의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대비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1951년에 태어나 혁명 이후인 6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지금 그의 연작은 쿠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쿠바 미술에 관해 여러 사실을 알려줍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일견 퇴폐적인 부르주아 미술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백민석 소설가
쿠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은 북한의 미술과 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입니다. 연대별로 나뉘어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놀랍게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60년대 이후에도 쿠바 미술의 풍부한 다양성이 위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제가 알기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쿠바에 온 이후로 “쿠바는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 말이 적어도 미술에서는 사실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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