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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쿠바 미술이 활기와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 사진은 독특한 필치가 돋보이는 피델리오 폰세의 회화작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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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의 리플릿]
(20) 특별편 쿠바②
쿠바 국립현대미술관은 쿠바 미술을 역사적 구분에 따라 여덟 시기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식민지 시절의 작품부터 현재의 작품들까지 모아놓고 있습니다. 근대미술이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분기점은 혁명이 있었던 1960년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이, 근대미술이 끝나고 현대미술이 출발하는 시점이 됩니다.
쿠바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의 국립미술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규모도 상당합니다. 식민 지배자를 쫓아내고 정권이 바뀌고 정반대의 체제가 들어섰다고 해서, 과거의 미술이 부정되고 작품이 훼손되는 일은 없었던 듯합니다. 이삼백 년씩 된 식민지 시절의 작품도 많고, 보존상태도 좋습니다. 1919년 작 마누엘 베가의 <눈먼 자들의 행렬>은 이미 오래전에 쿠바의 회화가 유럽의 회화를 받아들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지역은 중남미이지만,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배가 오래 이어져온 탓입니다.
마누엘 베가 역시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서양의 회화를 접하고 배운 작가입니다. 검은 옷을 걸친 눈먼 자 몇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 어디론가 갑니다.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고, 가운데 사내는 두 팔을 길게 펼쳐 동료들이 자신을 길잡이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이 극단의 어둠이 베가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 어둠은 실재하는 바깥의 어둠일 수도 있지만, 눈먼 자들이 자신의 먼눈으로 본 눈꺼풀 안쪽의 세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눈먼 자들의 내면이 투영된 세계, 주관화된 세계입니다. 풍경화와 초상화가 대부분인 20세기 초반에 벌써, 베가는 상상력에 의지해 내면이 반영된 세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1960년 혁명이 근현대미술 분기점유럽 영향 등 과거미술 부정 안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일색 아닌
다양하고 현대적인 화풍들 아바나 곳곳 왕성한 미술 활기
표현자유 억압 우리 현실과 대비
표현의 자유는 체제문제 아냐 저는 피델리오 폰세의 작품이 가장 좋았습니다. 회화작품은 사진으로는 매력을 전부 담아내지 못합니다. 붓 터치나 색감의 조화가 세밀한 부분까지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폰세의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폰세의 1938년 작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 폰세의 그 독특한 붓 터치 때문에 저는 유령들을 표현한 줄 알았습니다. 캔버스의 뒷면, 저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누런빛이 약간 도는 흰 안개 같은 기운이 피어올라 인간의 형상이 되어 캔버스의 표면에 맺힌 줄 알았습니다. 형상들이 흰 옷을 걸친 아이들과 강아지임을 알아차린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폰세의 인물들에서는 생명력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윤곽은 흐리고 표정은 뭉개져 있습니다. 주체는 점차 존재감을 상실하고 배경과 뒤섞입니다. 다른 작품 <폐결핵>에선 아예 해골이 등장합니다. 인물들은 오른쪽 하단에 놓인 해골을 중심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습니다. 언뜻 도망치는 듯 보이기도 하고, 빨려 들어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중심은 해골입니다. 에바 폰세카는 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반군 출신입니다. 그는 승리를 거둔 후 예술학교에 들어가 화가로 전직을 합니다.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도 자신이 산악부대원 출신임을 밝히는 재즈 뮤지션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폰세카의 작품들 어디에도, 계급이나 투쟁이나 혁명 같은 정치적 테마는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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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작가 에베르 폰세카의 1968년 작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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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남쪽 알마세네스 산호세 창고 건물의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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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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