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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7 20:03 수정 : 2016.03.18 10:48

사진가 이재갑의 <베트남> 연작은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이다. 가만히 보면 누군가의 실루엣이 있는 듯 보인다.

[백민석의 리플릿]
(25) 역사에서 승자의 의미

전시회에 가서 강렬한 인상을 받긴 받았는데 그 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 강렬함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막연한 경우가 있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전시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근래엔 크리스틴 아이 추의 전시회가 그랬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처음 눈에 띄는 것은 혼란스러운 윤곽의 희고 붉은 형체들이다. 조명은 어둡고 벽면에는 한 작품만 걸려 있어 관람객은 더욱 집중하게 된다. 흰색과 적색의 강렬한 대비를 향해 전시실을 가로지르며 작품은 뚜렷해진다. 새하얗고 윤곽이 둥글둥글한 형체가 캔버스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위로 유리 파편 같은 모서리를 지닌 적색이 범벅이 되어 있다. 그냥 붉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나라하고 날것인 적색, 누군가 침대 시트에 토해놓은 핏덩이 같다.

작품 바로 앞에 서면 캔버스 왼쪽 상단에 놓인 술병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하단엔 길쭉한 와인 잔이 입구를 아래로 하고 쓰러져 있다. 이제 비로소, 붉은 형체가 쏟아진 레드 와인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캔버스에 가득한, 거의 바탕색처럼 보이는 흰색은? 그는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의 살진 인간이다. 한 팔로 술병을 껴안고 다른 손으론 와인 잔을 쥐고 있다. 잘 보면 초점이 풀리고 눈가가 상기된 두 눈도 찾을 수 있다.

크리스틴 아이 추의 <양심적인 폭음>.

이 <양심적인 폭음>(Conscientious Gluttony, 2007)은, 제목부터 모순이 느껴진다. 어떻게 폭음이 양심적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아이 추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인도네시아 작가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의 리플릿에도 최소한의 정보만 실려 있다. 나는 이 전시회를 두 번 찾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다음엔 이 강렬함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나중에 제작된 리플릿을 받으러.

벌거벗은 주정뱅이가 지저분하게 와인을 쏟은 광경을 내가 피범벅으로 착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몇 달 전에 <액트 오브 킬링>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같은 아시아권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 의하면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전국에서 250만명을 학살했다.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장악이 쉽지 않자, 군부는 프레만(Freeman)이라는 무장 사조직을 동원한다. 영화는 쿠데타 당시 군부의 편에 서서 빨갱이 색출과 사상검증, 고문과 살해까지 맡아 실행했던 프레만 조직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적나라한 날것인 붉은 색감 가득
크리스틴 아이 추 ‘양심적인 폭음’

베트남전 종전 40주년 맞아 연
이재갑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역사의 승자들은 목소리 높이나
지나간 흔적은 기억을 되살린다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자 1천명을 처형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실제 인물이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그는 지역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 감독의 요구에 극중 코미디의 주연을 맡은 콩고는, 자신의 손으로 온갖 방법으로 유희나 다름없이 이뤄졌던 처형 작업을 꼼꼼히 재연해낸다.

<20세기 세계와 한국>(양동주 편저, 크로니클코리아, 1995)에는 이 우익 혁명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나온다. 반정부 폭동이 일어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1965년 10월 공산당을 불법화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까지 공산주의자 10만명을 살해한다. 다시 3월에는 “어젯밤 정권을 장악한 수하르토 장군은 이후, 최초의 공식 조처로서 공산당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릴 것을 군에 명령했다.”

안와르 콩고가 행했던 고문과 살해가 바로 그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그 이후 반세기를 역사의 승자로, 승자의 당당함과 자부심으로 살았고, 카메라 앞에 서서도 떳떳하게 자신의 업적을 설명한다. 자신은 옳은 일을, 정당하게 치렀다. 이 영화를 봤으니 인도네시아 작가 크리스틴 아이 추의 적색을 핏물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각적으로 붉은 물감은 피, 그리고 분노를 상기시킨다. 아이 추가 캔버스에 뿌려놓은 붉은 물감의 날카로운 윤곽은 살을 벤 흉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사의 상흔으로부터 배어나와 기억을 환기시키는 아직도 피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매개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착각은 착각이다.

이재갑의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비슷한 시기 아시아의 또 다른 비극이었던 베트남전의 종전 40주년을 맞이해 열렸다. 제목에서도 보듯 베트남전에 대한 기억은 하나가 아니다. 먼저 한국군에게 학살과 성폭력을 당한 베트남인들의 기억이 있고, 그 너머에 40년이 지나 겨우 한국을 찾은 베트남인들을 향해 “일제히 군복과 선글라스를 쓰고 (나와) 서너 시간 동안 군가를 틀고 고함을 내지”른 300명 참전군인들의 기억이 있다. 이들의 시위로 결국 전시회 개막식은 취소됐다.

전시가 열린 스페이스99는 큰 규모의 미술관이 아니다. 화랑가에서도 떨어져 있어 관람객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개막식에 참석한 학살 생존자는 겨우 둘뿐이었다. 두 사람이 가진 기억을 밀어내기 위해, 다른 기억을 공유하는 300명이 벌인 시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베트남 땅에는 한국군을 증오하는 60여개의 증오비가 세워져 있고, 한국 땅에는 베트남 참전 기념비가 100여개 세워져 있다. 기사에 의하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학살된 민간인은 “9천명”에 달한다. 작가 이재갑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선 베트남 참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비극을 한국에서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학살 생존자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 가득 붙여놓은 베트남인들의 인물사진이 눈에 띈다. 흔히 보아오던 인물사진과는 다르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고 애써 표정을 꾸미려고도 하지 않는다. 복장도 평상시 입던 그대로인 것 같다. 무언가 말하는 듯 입술이 벌어져 있거나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있다. 웃는 인물은 없다. 격앙된 표정이거나, 꿈틀거리는 옛 기억에 쓴입을 다시는 표정이다.

이재갑의 사진전 벽면 베트남인들의 인물 사진 앞에는 비닐막이 놓였다.

사진 속 베트남인들은 증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증언하는 베트남인들과 관람객 앞에는 반투명의 두꺼운 비닐막이 가로놓여 있다. 몇 발짝 더 가까이 가서 귀 기울이고 싶지만 비닐막을 넘어갈 수는 없다. 비닐막은 베트남인들을 완전히 감추지도, 그렇다고 투명하게 드러내놓지도 않는다. 관람객은 비닐막에 가로막혀서, 증언 앞에서 답답하다. 비닐막 앞에 서서 베트남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전시실을 지키는 큐레이터가 다가와, 이 비닐에 난 구멍들은 전쟁 당시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해준다. 작가에 의하면 베트남인들에게 비닐막은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미국은 사체를 처리할 때 주로 비닐을 썼다.”

다른 <베트남> 연작은 평화로운 바닷가의 풍경이다. 베트남 전통의 바구니 배 세 척이 나란히 놓였고, 바다는 납빛으로 가라앉아 물결도 일지 않는다.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실루엣이 가운데 배에 걸터앉아 있는 듯이 보인다. 인물을 실루엣처럼, 허공에 남은 흔적처럼, 유령처럼 처리한 의도는 너무 분명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는 죽은 사람이고, 고향일지도 모르는 바닷가를 떠난 사람이다. 평화는 돌아올 수 있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패배했기 때문에 바닷가를 떠났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는 승리했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힘센 자인 미국의 편에 섰기 때문에 지금 살아남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는 우리에게도 격변의 시기였다. 1960년에는 4·19혁명이 있었고, 그 다음해에는 5·16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그때 들어선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5년에 처음 한국군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안와르 콩고가 빨갱이 사냥을 나서

1천명을 처형하고, 전국에서 반공의 기치 아래 250만명이 살육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의 승자가 되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백민석 소설가
역사의 승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지도,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패자의 상처 앞에서 반성하지도, 그 바닥없는 슬픔에 공감하지도 않는다. 행위의 정당성은 역사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트로피처럼 보인다. 아직은 내 지성이 가닿지 않아 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이 있다. 역사에서 승자란 무엇이기에 인간을 그처럼 뻔뻔하게 만드는가.

백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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