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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나쁜 괴물 되기강혜숙 글·그림/한울림어린이 펴냄(2104) 부모의 말을 안 듣는 아이는 그림책의 단골 소재다. 야단치는 부모를 피해 계속해서 말썽을 부리는 장난꾸러기. 그런 아이를 호되게 야단치면서도 결국은 사랑한다는 말을 아이에게 전하는 부모는 실은 그림책이 아닌 현실 그 자체다. 강혜숙의 <세상에서 가장 나쁜 괴물 되기>는 그런 아이 자리에 괴물을 집어넣었다. 그것도 말 안 듣는 나쁜 괴물. 가만 생각하면 괴물이니 말을 안 듣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말을 들으면 그것이 괴물인가 싶다. 인간은 나쁜 짓을 하면 야단맞지만 괴물은 착한 짓을 하면 야단맞는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부모 말을 안 듣고 자기 할 일을 안 해야 진짜 나쁜 괴물이다. 나쁜 짓을 골라 하라는 부모의 잔소리를 거절하고 착한 행동을 하자 괴물은 ‘슈퍼 나쁜 괴물’로 상을 받는다. 이런 멋진 아이러니의 창조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괴물과 인간을 대비하면서 괴물은 착하게 굴면 나쁜 괴물이 되고 그것이 결국 칭찬을 받는다는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게다가 사교육까지 시키면서 아이 괴물을 최고로 나쁜 괴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부모 괴물의 모습은 이 시대에 대한 제대로 된 풍자다. 우리 시대는 아이들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지만 노력의 결과는 영 미덥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을 괴물로 키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어쩌면 우리 사회, 우리 어른들이 괴물은 아닌지 답답하다. 이처럼 절묘한 아이러니와 풍자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역설적 표현을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역설적 표현은 눈에 빤히 보여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워서는 곤란하다.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칠 수 있어야 성공이다. 말로 구구절절 설명을 달고 해석해서야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아이들은 언제쯤 아이러니를 이해하게 될까? 보통 만 네살 정도 되면 과장어법을 이해할 수 있고, 여섯살이면 아이러니에서 재미를 느낀다. 풍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한참 많은 나이가 필요하다. 강혜숙의 이 책은 그림과 소재로 볼 때 학령기 이전의 유아를 독자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반면 초등학생들은 이 책을 보고 키득키득 웃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책은 여러번 반복해서 볼 정도의 매력은 없다. 캐릭터도 이야기 구성도 그 나이 아이들을 만족시키기엔 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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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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