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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8 20:56 수정 : 2015.10.22 16:19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고맙습니다, 선생님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서애경 옮김/아이세움 펴냄(2001)

인생에서 해피엔딩은 흔치 않다. 삶은 행복을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때때로 우리에게 오지만 무척이나 변덕스럽다. 동유럽풍의 독특한 그림이 생생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작가 패트리샤 폴라코의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주인공 트리샤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가족 모두가 책을 읽는 것을 사랑하기에 트리샤는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자신도 책을 잘 읽을 수 있고,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트리샤에게 글자는 이해할 수 없는 부호였다. 들으면 다 이해하고 따라 할 수도 있지만 글자는 읽기도 쓰기도 어려웠다. 트리샤는 난독증이었다. 트리샤의 학교 생활은 괴로움과 두려움의 터널이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트리샤를 바보라고 놀렸는데 트리샤 역시 스스로를 바보라고 믿어버렸다. 학교에 가면 트리샤는 구석에 숨어서 모두를 피해야만 했다.

난독증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병이다. 지능은 정상이고, 들으면 다 알지만, 읽는 것은 너무 힘들다. 글자를 소릿값과 연결 짓지 못해 눈앞의 글자를 봐도 소리로 바꾸지 못한다. 말이 먼저고 글이 나중에 생긴 것이기에 우리는 소릿값으로 단어의 의미를 기억한다. 그런데 난독증 아이들은 글자를 소릿값으로 바꿔내지 못하니 결국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난독증은 신기하고 특별한 병은 아니다. 음의 높낮이 구별이 어려운 음치, 박자 감각이 없는 박치, 신체 조절 능력이 약한 몸치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문제다. 다만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노래를 부르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는 트리샤 앞에 폴커 선생님이 나타난다.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다. 늘 트리샤의 좋은 면을 보고 격려하고, 친구 관계의 어려움도 도와준다. 하지만 가장 큰 도움은 트리샤가 결코 바보가 아니고 난독증을 앓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그리고 트리샤가 제대로 읽을 수 있게 천천히, 조금씩 트리샤와 함께 나간다.

트리샤는 결국 해낸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학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 그 트리샤가 바로 작가 패트리샤 폴라코임을 고백한다. 작가는 30년이 지난 후 폴커 선생님을 어느 결혼식장에서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밝힌다. 글자를 못 읽던 자신이 지금은 어린이책 작가가 되어 있다고. 극적인 해피엔딩이다. 글을 모르던 그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다니. 선생님의 밝은 눈과 실력, 아이를 도우려는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오늘은 한글날이다. 과학적이고 쉬운 한글. 하지만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그림책도 부담스러운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 스무 명당 한 명꼴이다. 그 아이들에게도 해피엔딩이 있기를. 아니다. 그 아이들의 해피엔딩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폴커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초등 1~3학년.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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