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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9 20:25 수정 : 2015.10.29 20:25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마음이 아플까봐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아름다운사람들 펴냄(2010)

슬픔의 반대말은 기쁨일까? 대부분 그렇다. 슬픔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슬픔의 반대말은 더는 기쁨이 아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그저 아픔이다. 압도적인 아픔 앞에서 우리는 감정의 통로를 막는다. 버틸 수 없기에 감정을 모두 차단한다. 슬픔은 물론 기쁨을 느낄 감정의 문도 모두 닫는다. 이제 슬픔의 반대말은 기쁨이 아니다. 무감정,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올리버 제퍼스의 <마음이 아플까봐>는 상실과 치유를 다룬 그림책이다. 한 소녀가 있었고 소녀를 늘 곁에서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소녀는 할아버지란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궁금해하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소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했다. 슬퍼할 수도 없었다. 울었다가는 눈물에 떠내려갈 것만 같아 울 수도 없었다. 대신 마음을 유리병에 넣어 나오지 못하도록 가뒀다. 두려웠기에 아예 감정을 차단한 것이다. 이제 소녀는 슬픔은 물론 기쁨도, 두려움과 꿈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상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상처만이 피를 흘린다. 죽은 사람은 상처도 느끼지 못한다.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존재가 기쁨도,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열정을 갖고 세상에 달려들 수 있다. 이제 소녀의 삶은 겨우 살아내는 삶이다.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만 목적도, 의미도, 방향성도 없다. 버티는 삶이다.

그러던 소녀가 한 아이를 만난다.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듯 호기심도 많고 거리낌도 없다. 하지만 소녀는 그 아이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병 안에 가둬두었기에. 소녀는 변하고 싶었다. 망치로 병을 내리치고, 톱으로 썰고, 높은 데서 떨어뜨렸다. 그래도 병은 깨지지 않았고 마음은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마음이 담긴 병을 가져가자 이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병에 손을 넣어 그냥 마음을 꺼냈다.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소녀의 열정은 다시 피어올랐다.

제퍼스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겁먹지 말고, 선입견 갖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과거는 지나갔고 상처는 흔적만 남아 있다. 흔적을 모두 지울 수는 없고 지울 필요도 없다. 흉터는 상처가 아니다. 상처의 흔적일 뿐. 과거의 내가 이겨낼 수 없던 일도 지금의 나는 잘 처리할 수 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슬픔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견디기 어려운 상처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견디기 어렵다면 잠시 도망가도 좋다. 하지만 오래 도망가서는 곤란하다. 결국은 슬픔을 관통해야 하고 그 힘은 사람에게서 온다. 우리에게 슬픔을 주는 것이 사람이듯 슬픔을 이겨낼 힘도 사람에게서 온다. 제퍼스는 연약한 다리를 가진 존재로 사람을 그린다. 우리는 그토록 약하다. 흔들린다. 하지만 약해도, 흔들려도 우리가 사람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아름다운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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