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21 20:36
수정 : 2015.05.22 17:12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영화 <매드맥스> 중에서
영화 <매드맥스>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아직도 적지 않은 스크린을 움켜쥐고 있는 <어벤져스> 2편이 개봉 전부터 엄청난 물량의 홍보 공세를 펼친 것과 다른 양상이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치고는 조용히 시작한 <매드맥스>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흥행에 불이 붙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내뱉는 수많은 말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한 단어가 있다. “미쳤다.”
이 반응은 영화 <매드맥스>의 홍보 문구와도 일치하는데, 포스터마다 적혀 있는 문구와도 맥을 같이한다.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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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드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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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에서부터 관객들의 반응까지 ‘광기’로 점철된 이유는 무얼까? 영화가 끝나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암전 화면 위 자막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한 미래,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독차지한 독재자가 인류를 노예처럼 지배하고 있다.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에게 저항하는 몇몇 반란자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가 실패하고 결국 독재자를 몰아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영화로만 봐도 역사상 최고의 액션 영화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액션에 비하면 <어벤져스>의 액션은 꼬마들 술래잡기 같다고 할 정도니. 그런데 이 영화는 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묵직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배경도 미래인데다가 등장인물과 그들이 타는 차량들의 모습도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재화의 편중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고민은 이 영화의 출발점과도 같다. 양극화라는 우리 시대의 병은 날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고 있지 않은가?
유토피아 따위는 없다는 주인공의 목소리도 큰 울림을 준다. 어딘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다고 믿으며 자꾸 멀리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은 단언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지금 이곳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고.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액션시(詩). 극도로 절제한 대사와 압축적인 이야기, 기괴한 꿈을 그대로 옮겨놓은 화면, 과감한 상징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한편의 시라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감독은 이렇게 멋지게 영화를 만들어놓고서는 끝에 가서 모든 미학적 성취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짓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앞에 말한 마지막 자막이다.
영화에 있어서 자막이란 무엇인가? 회화 작품으로 치면 테두리선처럼 지워야 할 무엇이다. 군더더기다. 그런데 감독은 제일 마지막 장면에 떡하니 자막을 박아놓았다. 그것도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같은 자막을.
‘황무지를 떠도는 우리, 더 나은 삶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하는가?’(필자가 임의로 번역했으니 극장 자막과는 다를 수 있음)
참 희한하지. 도저히 이 자막을 욕할 수가 없다. 자막이 없어도 충분히 당신 말을 알아들었으니 자막을 걷어달라고 해야 정상인데, 나에게 편집권이 주어져도 자막을 걷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이 자막을 명대사라고 할 수밖에.
독자님들께서도 지금 눈을 감고 생각해보시길.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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