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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4 19:03 수정 : 2015.06.04 21:06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 컨테이젼

영화 <컨테이젼>이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개봉한지 몇 년이 지났고 겨우 2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본 영화가 지금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메르스 때문이다. 낯선 호흡기 질환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니까. 우리 영화 중에서도 <감기>가 비슷한 소재와 내용을 갖고 있지만 <감기>는 재난영화라는 장르의 공식에 충실한 터라 실감이 덜 난다. 그러나 ‘전염’이라는 뜻의 직접적인 제목을 내세우는데서 알 수 있듯 <컨테이젼>은 얼핏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이자 영화 속 질병의 예방법이다.

이 영화는 감염자와 감염자 가족, 질병통제센터의 박사, 그리고 프리랜서 기자까지 등장해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각각의 입장에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치료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은 극사실적으로 연출한 반면, 출연진은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다.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로렌스 피시번, 마리옹 꼬띠아르 등 혼자서도 영화 한 편은 능히 책임질 주연급 배우들이 우르르 출연했다. 캐스팅만 보면 재난영화 장르의 <오션스 일레븐>이랄까? 소재만으로는 묻히기 쉬운 이 영화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염원 때문은 아닐까 예상해본다.

영화 <컨테이젼>
영화를 보다보면 거의 전염병 예방 계몽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경고와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사실 요즘 같은 때를 빌미로라도 이 영화를 찾아보는 것은 인생에 무척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이 영화 생각이 자꾸 나서 안타까웠다. 한 국가의 대국민 홍보 시스템이 남의 나라 영화 한 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에 발표한 메르스 예방 대책을 보면 개그가 따로 없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같은 상식적인 생활지침과 함께 ‘낙타와 접촉 피하기’, ‘낙타고기 먹지 말기’ 등을 홍보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심한 홍보정책 아래 달린 댓글들이 오히려 예술이다. ‘출근할 때 낙타 타고 가려고 했는데 큰일날 뻔 했다’, ‘낙타 1종 따려고 했는데 포기’, ‘냉장고에 있는 낙타유 버려야겠다’ 등등.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컨테이젼>의 과격한 대사가 더 와 닿는다. 낙타 운운하는 대신 차라리 이 영화를 보라고 하지.

혹자는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도 마스크도 쓰지 않고 보통 때보다 손을 더 자주 씻지도 않는다. 나처럼 무덤덤하게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마스크에 장갑으로 중무장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지금 우리가 마주한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걸리면 치사율 또한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는 지나친 공포를 우려하지만 대중의 공포는 정당하다. 무서워야 조심도 하는 법이니까.

앞으로도 새로운 바이러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에이즈, 사스, 메르스 등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잘 알지 않나? 현실은 언제나 영화나 드라마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부디 메르스 사태가 더 이상의 희생자 없이 진정되기를 빈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영화 속 대사가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기를 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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