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독서무한
파농-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이경원 지음/한길사 펴냄(2015) 인종차별로 고통당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알제리에 이런 속담이 있었단다. “프랑스 사람이 스페인 사람에게 침을 뱉으면 그 스페인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에게 침을 뱉고, 그 이탈리아 사람은 몰타 사람에게, 그 몰타 사람은 유대인에게, 그 유대인은 아랍인에게, 그 아랍인은 흑인에게 침을 뱉는다.” 이 얘기를 한 프란츠 파농(1925~1961)은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섬 마르티니크 출신 흑인이었다. “유럽에 레닌이 있었고, 아시아에 마오쩌둥이 있었다면, 아프리카에는 파농이 있었다”(셰리프 게랄)는 말로 회자되기도 하는 파농은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인 후예로, 프랑스 유학 뒤 의사가 돼 인종차별에 저항하다 식민지 해방전쟁을 이끌며 온 삶을 알제리 혁명에 바쳤다. 이 알제리 속담을 이렇게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인이 프랑스인에게 침을 뱉으면 그 프랑스인은 일본인에게 침을 뱉고, 그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그 한국인은 중국인에게, 그 중국인은 동남아인에게…” 머지않아 미국인, 프랑스인 다음에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으로 그 순서가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 인종차별적 서열구조가 만들어내는 끔찍한 결과를 우리는 바로 이 땅에서 매일 체험하고 있다. 이경원 연세대 교수가 쓴 <파농>의 서문 격인 ‘왜 다시 파농인가’는 한국 사회가 식민지 알제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인종차별과 강박적 열등의식, 맹목적 강자(우월자) 닮기 열망으로 대표되는 ‘유색인’의 정신적 파산 상태의 섬뜩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백인 피부를 바라는 ‘백색 미인’ 선망, 백인이 모델인 성형수술과 영어 광풍, 명품 열풍, 백인이 늘 영웅이 되는 할리우드 영화 폭풍, 오페라, 뮤지컬, 연극, 컴퓨터게임….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소비하려고 안달하는 서구 물품과 이미지에 대한 열광을 이 교수는 ‘누런 피부, 하얀 가면’이란 말로 표현했다. 이는 유색인의 이 전면적인 자기부정과 강자추종의 정신 파산 상태를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란 말로 압축한 파농에 대한 오마주일까. 파농은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10%도 안 되는 유럽-기독교 정착민들이 90%의 아랍-무슬림 원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알제리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두고 이렇게 썼다. “식민지에서는 경제적 하부구조도 일종의 상부구조다. 원인이 곧 결과다. 백인이기 때문에 부자고, 부자이기 때문에 백인이다.” 이 교수는 지적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백인 영어원어민 강사들은 모국에서의 경쟁에서 밀려난 잉여노동력이었지만 이 땅에 오면 고임금을 보장받는 선진문화의 전도사가 된다.” “개인의 주체 구성에 사회환경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파농의) 가설”과도 상통하는 얘긴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 상태가 식민지 알제리인 대다수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면, 한국 사회 또한 식민지라는 얘기 아닌가. 파농에 따르면, 식민지적 상황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정신병을 앓게 만드는 것이지 가난하고 정신병을 앓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당하는 게 아니다. 그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들이다. 식민지 부르주아들은 재빨리 동포 약자들을 배신하고 침략자들 언어를 배운 뒤 그들에게 빌붙어 기득권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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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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