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독서무한
유착의 사상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심정명 옮김/글항아리(2015) 아베 신조 1차 내각 때인 2007년 4월, 워싱턴에 간 아베 총리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을 궁지에 빠뜨렸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말했다. “인간으로서, 총리로서, 마음 깊이 동정하고 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부시는 이렇게 받았다. “위안부 문제는 세계사에서 유감스런 한 장이다. 나는 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 이 희한한 장면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논평은 이랬다. “총리가 사죄해야 할 대상은 위안부가 아닌가. (…) 국내 비판엔 개의치 않더니 미국에서 논란거리가 되면 곧바로 사죄한다.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런 입바른 소릴 하다가 <아사히>는 제2차 아베 내각 들어 집중적인 견제와 미움을 받았다. 일본 총리가 왜 ‘위안부 문제’로 당사국인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가서 죄송하다며 사죄했을까? 그리고 미국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일본)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했을까?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나? 지난 14일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와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8년 전의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아베 총리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 표명을 미국 정부는 환영했다. 이번에도 한국은 없었다. 도미야마 이치로 도시샤대학 교수는 저서 <유착의 사상>에서, 일본 패전 당시 ‘오키나와 연맹’ 회장이었던 이하 후유가 전후 오키나와의 귀속문제와 관련해서 쓴 이런 구절을 인용한다. “…어떤 정치 아래에서 (…) 오키나와인은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문제는 오키나와사의 범위 바깥에 있는 고로 (…) 여기서는 그저 지구상에서 제국주의가 끝을 고할 때 오키나와인은 ‘니가유’에서 해방되어 ‘아마유’를 누리며 개성을 충분히 살려 세계문화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붓을 놓는다.”(<오키나와 역사이야기>, 1947) 오키나와 방언 ‘니가유’는 ‘비참하고 불행한 세상’을 가리킨다. 유(世)는 세상이고, ‘아마유’는 아메리카유, 즉 미국세상이다. 이하 후유는 새로운 미국세상 하의 미래에 희망을 거는 듯 말하지만, 중요한 건 오키나와인의 운명이 “오키나와사의 범위 바깥”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인식이다. 말하자면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의 이행일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태평양 일대의 일본 속령지들을 ‘신탁통치’형태로 사실상의 자국 속령지로 만들려던 미국은 ‘오키나와에 대한 미래의 잠재 주권은 일본에 있다’는 조건을 걸고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그 오키나와를 미국은 1972년 일본에 ‘반환(주권 복귀)’했지만, 여전히 점령하고 있다. 찰머스 존슨이 얘기한 ‘군사기지 제국’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 형태는, 프랑스가 ‘공동체’란 미명 하에 아프리카 등의 식민지들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 고안해낸 ‘프랑스형 코먼웰스’와 닮았다고 도미야마 교수는 얘기한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도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이를 식민지주의 문제로 다룬다. 혹시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분단하고 점령한 한반도 남쪽에 대해서도 그 ‘미래의 잠재 주권’을 일본에 맡긴다고 밀약이라도 한 걸까? 가쓰라-태프트 밀약 때처럼. 항일세력을 물리치고 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것도 그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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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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