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1.19 20:43 수정 : 2015.11.19 21:39

한승동의 독서무한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핼릿 카 지음,김택현 옮김/까치(2015 개역판)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 제1장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마감한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카는 이 1장을, <케임브리지 근대사> 편찬 작업을 맡았던 19세기 역사가 액턴이 역사적 사실들의 충실한 집합을 통해 완전에 가까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피력한 1896년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뒤이어 그 60년 뒤 <케임브리지 근대사> 제2차 간행분 서문에서 “후대의 역사가들은 조금도 그런(액턴과 같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쓴 역사가 조지 클라크의 말을 인용한 뒤, 덧붙인다.

“액턴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긍정적인 신념과 분명한 자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반면 조지 클라크 경은 비트 세대의 방황과 곤혹스러운 회의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

카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즉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을 회의한다.

일제 식민사관에도 악용됐고, 한국 보수 주류 역사가들이 물려받은 이 실증주의 사관은 문제가 많다. 역사적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다 긁어모아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역사가가 활용하는 사실·사료는 역사적 사실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것마저 역사가가 취사선택한 것이며, 그 해석 또한 주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조차 실은 역사가 개인의 주관과 그를 낳고 키운 시대적·사회적 영향이 강하게 각인돼 있다.

영문학자요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저서 <문학이론 입문>(Literary Theory, An Introduction, 1983)에서 얘기한다.

“문학은 (…)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문학을 구성하고 있는 가치판단은 역사적으로 변화돼 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가치판단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개인적 기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사회집단이 다른 사회집단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여러 전제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하시 요이치 번역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와나미 문고, 2014)

여기서 문학을 역사로 바꿔 읽어 보라.

카가 말한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는 역사에서 정해진 답, 정본이 없다는 얘기다. 역사란 사실의 취사선택과 해석의 끝없는 과정,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늘 변주되는 재해석이다. 거기엔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특정 시대 특정 지배권력의 생각을 ‘정본’으로 제시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런 이데올로기의 발현이지만, 그것이 (친일)기득권층의 과오를 은폐하고 지배세력의 계급적 전제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대착오이며 반동이다.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승동의 독서무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