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독서무한
개성공단김병로·김병연·박명규 외 지음/진인진 펴냄(2015) “남측 기업은 북한 남자들을 싫어해요. 여자를 선호한다고 그래요. (…) 남자들은 집 지키는 멍멍이로 남아 있어요. 남자가 새벽 5시부터 밥 끓여서 내보내고, 가장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여성들은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야근은 돈을 더 주니까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북의 기혼여성들이 개성공단에 출근하면서 생긴 변화다. 집 지키는 남자는 ‘낮전등’(필요없는 존재), ‘만원짜리 열쇠’ 등으로도 불린단다. 개성공단엔 5만 3천명의 북 주민들이 일한다. 그들의 증언(다섯차례의 심층 인터뷰로 채록) 일부를 <개성공단>에서 따와 옮긴다. “공단 상품이 전국에 다 나가요. 원산, 평양까지 고속도로가 있고, 개성-신의주, 사리원-함흥, 사리원-만포행 열차가 있어서 기차로 수화물을 부치는데, 이를 ‘짐쏘기’라고 하지요. 전화로 연락하면서 상품과 돈이 오가죠. 물건 보낼 사람과 받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거간꾼도 있어요.” “한번 혜산에 가니까 개성공단 오뚜기카레, 소고기 맛나, 그런 것들을 평양 장사꾼이 짐쏘기로 보냈더라고요. 팔아달라고. 우리 직장 사람이 개성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여잔 계속 개성공단 상품을 날랐어요. (…) 미원, 신발, 옷, 샴푸, 화장품 등 각종 상품을 날라오는데 시장에서 안 팔아요. 다 돈주들이나 잘사는 사람들이 주문하는 걸 받아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팔고 그래요.” 이런 암시장을 ‘구들장’이라고 한단다. “그 평성 장사꾼 (…) 여자 집에 가니 개성공단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신발, 옷가지 없는 거 없어. (…) 그 여자 말이 자기 상품 내가자마자 장사꾼들 싸움질하며 가져간다는 거야. 중국 상품 딱 끊고 개성공단 상품을 나르기 시작했어.” “오물(쓰레기) 처리공이 제일 신나요. 북에서는 버릴 게 없어요. 오물이 다 돈인데. 박스, 비닐, 천 자투리, 이런 거 트럭으로 한 차면 1500~2000달러에 팔려요.” “중국 거보다 월등하게 좋다는 인식이야 다 가지고 있었지 뭐. 중국인들에게 열등감 느끼다가 남한 게 더 좋으니까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 “공단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여러가지로 먹을 것이 부족하고, 아우성이 많고, 그때 두석달만 더 막았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의 불평불만이 터질 수 있는 위기가 왔을 거예요.” (2013년 4월부터 4개월간 공단 가동이 중단됐을 당시 상황)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북한에서 중산층에 들어가요. (…) 다른 직장과 비교가 안 돼요. 한 명만 들어가면 온 가족이 먹고 사니까. 장사 뼈빠지게 해도 끼니 에우기 힘든데. 자꾸 비교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하나. 공단 같은 게 더 많이 생기면 우리 모두 들어갈 텐데.” 개성 사람들은 한 집에 한 명씩 자기 가족 공단에 들여보내기 운동을 한단다. 돈 쓰는 로비까지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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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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