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독서무한
도쿄대 교수를 지낸 에가미 나미오(1906~ 2002)의 <기마민족국가: 일본 고대사 어프로치>(초판 1967년, 주코신서)는 말썽 많은 ‘임나 일본부’를 이렇게 읽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천손 신화를 지닌 천신(天神, 외래민족)이 일본열도로 건너와 원주민족을 정복해서 세운 나라다. 건국은 2단계를 거쳐 이뤄졌다. 1차 건국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 방면에서 일본 남단 규슈 북부 쓰쿠시(筑紫)로 침입한 시기. 2차 건국은 다시 거기서 기나이(畿內, 메이지시대 이전까지 일본 황실이 있던 교토와 그 인근 지역)로 진출한 시기. 제1단계는 4세기 전반이고, 제2단계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다. 그러니까 에가미 교수는 일본 민족의 형성과 관련해 남방전래설이나 자생설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초원길을 누비며 중국 중원 및 한반도와 침략·정복·이주 등으로 얽히고설킨 기마민족의 한 갈래가 일본열도까지 와서 원주민을 정복함으로써 만들어졌다고 설파한다. 일본에는 남방계도 있고 북방계도 있지만, 지금의 일본 민족 주류를 형성한 건 바로 이 기마민족들의 후예라는 것. 그들의 한반도 출발점, 근거지가 바로 지금의 경상남도 중남부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가야(변한)다. 에가미 교수는 이 가야가 곧 임나이며, 그곳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천손족 진왕(辰王)계 지배자가 가야를 한반도 내 기지로 삼고 있던 왜인들 도움을 받아 규슈로 쳐들어간 뒤 마침내 기나이, 즉 지금의 교토·오사카·나라 일대까지 정복해서 야마토(大和) 조정을 세움으로써 일본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요컨대 ‘임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 지배세력을 한반도 거주 기마민족으로 보는 견해다. 이는 임나 자체가 아예 없었던 허구라고 보거나,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일본 남부에 있던 한반도 세력의 일본 내 기지로 보는 설, 또는 임나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고 보는 일본 국수주의자들 주장과는 좀 다르다. 재일동포 사학자로 하나조노대 교수를 지낸 강재언과 교토대 교수를 지낸 우에다 마사아키 공저로 1985년에 초판이 나온 <일본과 조선의 2천년>(오사카서적)은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 긴메이(欽明) 천황조에 처음 나타나는 ‘임나 일본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낸 <역주 일본서기>(제2권)도 <일본서기> 기록상의 해당 연대는 541~554년으로, ‘일본’이라는 국호가 만들어진 게 7세기 말 이후여서 ‘일본부’라는 명칭 자체가 그 뒤 가필·수정을 거쳐 생겨난 것으로 본다. 냉전 붕괴 뒤인 1990년대 중반 역사수정주의자들(일본판 뉴라이트) 등장, 특히 아베 신조 정권 등장 이후 일제 식민사학자들 메뉴였던 ‘임나’가 다시 한·일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근대의 침략전쟁을 아시아민족 해방전쟁으로 보는 일본 우파들의 가당찮은 도착적 사고는 메이지 시절 ‘정한론’자들 수준에서 여전히 맴도는 듯하다. 한반도와 만주 지배, 적어도 그들이 망상해온 한반도 남부의 ‘임나 일본부’라는 ‘고토’ 회복이 저들의 ‘꿈’이라는 얘기가 21세기에도 떠돈다. 과거는 현재의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런 면에서도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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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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