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2 20:21
수정 : 2016.06.02 20:21
한승동의 독서무한
2016년판 프랑스 출판산업 주요통계(2014~2015년 기준, 문화커뮤니케이션부 공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시판되는 전체 출판물 중 외국어 번역물의 비중은 17.7%(1만1847종)다. 이 번역물 중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언어가 영어로 58.1%(6879종), 그다음이 일본어 12.1%(1432종)다. 그리고 독일어 6.4%(754종), 이탈리아어 4.4%, 스페인어 3.2%, 스칸디나비아어 2.1%, 포르투갈어 1.0%, 그다음이 중국어 0.9%(고작 110종)다.(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
한국문화 붐이 일고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는 경사에도 한국어는 그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그런데 한국 출판물에서 차지하는 일본어 번역물 비중은 프랑스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일 것이다.
세계는 여전히 ‘그들’이 지배하고 있다.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 까치, 2015 개정판) 제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역사가라면 누구나 산업혁명을 아마도 이론의 여지 없이 위대하고 진보적인 하나의 업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역사가는 또한 도시로부터의 농민 추방, 더러운 공장과 불결한 거주지로의 노동자들의 집결, 아동 노동의 착취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 그러나 그는 (…) 강제와 착취의 수단들이 적어도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공업화 비용의 불가피한 일부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역사가들은 19세기 서구 국가들에 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화를 용서하면서, 그 근거로 그것이 세계 경제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 두 대륙의 후진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장기적인 결과를 들먹이고 있다. 결국 근대 인도는 영국의 지배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 중국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며 거기에는 러시아 혁명의 영향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그 강제와 착취가 결국 오늘의 한국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고 한민족에겐 축복이었다는 일본 보수우파와 그것을 추종하는 이 나라의 식민지근대화론자들 얘기가 떠오른다. 조건반사와도 같은 이런 자동연상은 일종의 사고회로, 즉 뇌의 손상에 버금가는 심리적 장애가 아닌가 생각하지만, 이 또한 식민지배가 낳은 후유증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후유증은 따로 있다. 그 때문에 또 다른 외세가 들어왔고, 나라가 동강나고 전쟁이 벌어져 모든 것이 파괴되고 수백만이 죽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동족 대결의 분단 상황은 계속되고 북의 2천만이 넘는 동족들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 절대다수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궁핍, 끊임없는 전쟁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변함없이 식민주의자들을 살찌우는 이 기막힌 상황을 비극이요 파산이 아니라 위대한 성취요 행복으로 여기는 자들이 지금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카는 그 바로 뒤에 서구가 강제한 근대화의 열매를 따먹는 것은 그 근대화 과정에서 강제와 착취를 당한 당사자가 아니라 그 후예들이라는 점을 애석해하면서, “역사는 모든 여신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잔인한 여신일 터이니, 그녀는 전쟁의 시기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경제발전의 시기에도 시체 더미 위로 승리의 전차를 몰아댄다”는 엥겔스의 말을 덧붙인다.
이 말도 어쩐지 ‘역사란 원래 그런 거야’라는 투로 들린다.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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