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7.01 09:12 수정 : 2016.07.01 09:18

한승동의 독서무한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일본의 경찰예비대를 미 지상군과 같은 수준으로 육성하고 6개 사단을 새로 추가해서 한국 전선에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이 당시 몰래 소해정과 일본인 요원들을 한국 전선에 파견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지만, 만일 그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의 일본 정규군 6개 사단이 한국전쟁에 파병됐다면 일본은 열일곱 번째 참전국이 됐을 것이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부교수가 저서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에서 인용한 일본 전사 연구자 사사키 류지의 ‘전방지원이 될 수도 있었던 일본의 후방지원’(1999)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 국무부의 거부로 실현되진 않았지만, 만일 제안대로 갔다면 일본은 그때 이미 아베 신조 정권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보통국가 일본’이 됐을 것이고, 한국전쟁은 미국-중국 전쟁을 거쳐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계속됐던 중국-일본 전쟁의 재판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됐다면 1894년 일본이 동학농민전쟁에 개입해 학살을 일삼고 청일전쟁까지 일으켜 이 땅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결국 한반도 병탄과 만주·대륙 침략으로 나아갔던 전쟁의 참극이 동아시아전쟁,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했을 가능성이 짙다.

한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당시 일본에서는 우익, 군 출신자들, 보수 정치인들, 나아가 사회주의자들까지 일본 재군비를 주장하고 있었다. 미 국무부 내에도 일본의 재무장과 한반도·만주 재장악이 소련의 팽창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까지 있었고, 제4차 한일회담 일본 대표 사와다 렌조 같은 자들은 조선과 만주 ‘회복’이 조상들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큰소리쳤다.

제3차대전으로의 확전 가능성 때문에 미 국무부는 그 제안을 차마 채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이 강요했던 ‘평화헌법’ 체제하의 ‘평화국가’로 계속 존속할 수 있었다. 평화헌법의 요체는 군사력 보유와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제9조다. 아베 정권은 이 제9조를 폐기하거나 바꾸려 한다. 이는 그의 외조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유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화국가 일본의 실상은 ‘기지국가’였다. <기지국가의 탄생>은 그것을 논증하는 책이다. 한국전쟁 때 일본은 한반도로 출격하는 미군의 전진기지, 병참기지, 중계기지, 후방기지가 돼 사실상 전쟁에 적극 가담했으며,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 재건에도 성공한다. 이런 기지국가로서의 일본 역할은 그 뒤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도 계속된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전쟁들에 핵심 기지 역할을 하면서 전쟁특수를 누려온 일본을 평화국가라고 할 수 있나? 그것은 기지국가라는 ‘현실을 덮어씌워 감추는 이념’이거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이념’일 뿐이 아닌가?

기지국가의 토대인 일본 ‘평화헌법’에 노벨 평화상을 주게 하자는 운동은 재고해야 할지 모른다. 냉전이 끝난 뒤 그 이면에 가려졌던 한국전쟁 휴전체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서 “통일도 없고 전쟁도 없다”는 한반도 현상유지를 전제로 한 일본 기지국가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아베 정권의 등장은 그 징후이자 귀결이다. 미국이 일본군의 한반도 투입을 언제까지나 거부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한반도가 또 전쟁판이 되는 걸 막고, 일본 기지국가체제를 해체하는 유력한 길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분단 해소다.

책지성팀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승동의 독서무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