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4 19:37
수정 : 2016.11.24 20:02
한승동의 독서무한
“(식민지배) 희생자는 제국주의에 의해 두 가지 선택, 곧 봉사냐 파멸이냐만을 제시받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05)에서 마르크스·엥겔스도 오리엔탈리즘에 침식당해, 피식민지인들을 나태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긴 점에서는 제국주의국가 정부 대변인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면서 그렇게 썼다.(334쪽)
일제 식민지 시절, 봉사냐 파멸이냐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국외로 탈출해 저항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망명정부를 세우거나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전 재산을 털어 인재를 키우고 장기전에 돌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가시밭길이었고 끝내 전사·아사·객사의 비극으로 끝난 예가 많았다.
반대로,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를 하다 30대 초반 나이에 일제 괴뢰 만주국 군관학교로 달려가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된 박정희는 봉사의 길을 택한 이들의 한 전형이겠다.
그 딸이 대통령이 돼 있는 지금 세계는 달라졌을까. 사이드는 그 책 제4장을 “제국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제국주의는 의문의 여지없이, 이제 경제적·정치적·군사적 관계 속에 더욱 강력하게 용인되고 있고, 그로 인해 경제적 발전이 늦은 나라들이 빠른 나라들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의 끝은 아직 기대할 수 없다.”(마이클 배럿-브라운 <제국주의 이후>에서 재인용) 상황은 사이드가 세상을 떠난 2003년에도, 지금도 변함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 직후 그에게 전화로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며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한국과 100%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당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등 시민단체와 야당은 사드 한국배치 및 이를 위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당장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평통사는 한일이 공유할 북 핵·미사일 정보가 “한국의 방어에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방어(엠디) 작전에 필요한 조기경보일 뿐”이라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일 엠디 체계를 연동시키고 이를 미국의 동북아 엠디 하위 체계로 결합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북과 중국의 모든 탄도미사일 정보를 일본에 제공해야 할지도 모르며, “남북간에는 군사적 충돌위험이 한층 높아지고 중국과의 관계는 파탄나며 동북아는 한미일 대 북중러로 갈려 진영간 대결과 위기가 구조화될 게 명확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백해무익’한 협정을 서두른 건 미·일의 강요와 그들의 도움으로 정권을 연명해보려는 박근혜 정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라고 평통사 등은 주장한다.
그 판에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군사령관은 “8∼10개월 안으로 사드 포대의 한국 전개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고, 한국 배치 사드 포대가 괌 포대보다 큰 규모일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가 미국 식민지인가? 지난해 2월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이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과 싸우는 한국·중국이 민족감정을 악용해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한다며 일본 편을 들었다. 트럼프 정부는 더할 텐데. 일본을 아시아 맹주로 만들어준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을 압박한 미국 요구를 냉큼 들어준 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였다. 이번엔 또 다른 박 대통령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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