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8 19:37
수정 : 2017.05.1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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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의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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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의 독서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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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의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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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일본이란 국가의 식민주의·군사주의·인종주의적 성격과 그 역사·사회적 배경을 서구 제국주의 침략사, 특히 미국의 태평양지역 헤게모니 장악과 엮어 이토록 명징하고도 간략하게 서술한 일본인 학자의 서술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옛 ‘대동아 공영권’ 지역 가운데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일본에 부여한 미국은 일본이 제멋대로 소련(러시아)이나 중국 또는 한국이나 북한과 화해하지 못하도록, 또한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의 미군 주둔권을 계속 정당화하기 위해서, (…) 옛날 일본에 병합당했던 섬들에 영토분쟁의 불씨를 키웠다.” 냉전질서 속에서 “횡재나 다름없는 경제적 헤게모니”를 누렸던 일본인들은 21세기 들어서도 냉전적 사고 회로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냉전 갈라파고스’로, 상상의 ‘섬’으로 일본을 폐쇄시켰다. “그리고 현실 속 섬들의 영유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동아시아인에 대한 적개심과 옛 식민지 출신자(의 후손)에 대한 퇴행적 인종주의를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가사와라, 이오섬(유황도) 등 일본에 복속 당한 태평양 섬들의 피침략 과정과 그 식민주의·인종주의적 성격, 거기에 대한 저항 등을 섬들의 주체적 대응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아시아·태평양 세계의 근대사를 새로 써온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이시하라 ??의 <군도의 역사사회학>(글항아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독도(다케시마)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는 곧 한-일 간 ‘독도분쟁’이, 동아시아·태평양을 자국의 배타적 이권지역으로 독점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결과물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영토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통해 일본이 중국, 러시아 등과 가까워지고 동아시아 긴장 상태가 해소돼 미군·미국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을 경계한다.
오가사와라 군도는 도쿄 남방 1000㎞ 해상의 작은 섬들이며, 이오 군도는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250㎞ 더 떨어져 있다. 원래 무인도였다가 19세기에 고래기름을 확보하려던 서양 포경선 등 외양범선들의 기지가 되면서 그 선원들과 탈주자, 이주민들이 정착했고 1876년에 일본에 복속 당했다. 2차대전 뒤 이들 섬은 미국의 신탁통치를 거쳐 미군 기지가 됐으며, 전쟁 때 강제퇴거당한 주민들은 오가사와라 선주민 일부를 제외하고 70년이 넘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패전국 일본은 전후 전승국 미국의 냉전정책에 편승해 “횡재”처럼 찾아온 “특권적” 경제성장을 즐기고 안주하면서, 주변 아시아국들에 대한 뒤틀린 특권·선민의식 속에 그들을 타자화하고 인종주의·식민주의를 부추겼다. 이시하라가 지적하듯, 유럽 바깥 타자들을 자의적으로 처분·포획하는 것을 ‘선점’과 해전(海戰) 자유의 법리로 정당화한 국제법(만국공법)은 서구 제국의 침략과 착취 논리의 연장이었다.
패전 뒤 일본은 미국 냉전정책의 수혜자가 됐고 과거사엔 눈감았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호시절을 보장했던 이 특권적 냉전체제 안주가 지금은 폐쇄성과 과도한 자기애·자기중심주의로 귀결돼 일본을 출구 없는 고립국가로 만들고 있다. 갈라파고스화다.
아베 신조 정권은 그럴수록 더욱 미국 쪽에 붙어 중국·북한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기득권 유지에 집착한다. ‘위안부 문제’, 한-미-일 삼각동맹, 사드 배치, 중-일 및 한-중 간 갈등 등이 모두 그 부산물이다.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분단 남북은 일제 식민지배 이래 미국·일본의 군사주의·식민주의에 희생당한 또 하나의 오가사와라요 오키나와일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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