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15 18:48
수정 : 2017.06.16 08:14
한승동의 독서무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로 방한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10일 한일 양국을 “멀리 떼어놓으려는” 세력이 양국에 소수지만 존재한다며 “한줌의 간계를 꾸미는 무리는 박멸해 가자”고 했고, 그 전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한·일이 서로) 얘기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이) 돈도 지불했는데 그 뒤에 다시 처음부터 재협상이라니,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박근혜-아베 정부간에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던 ‘12·28 합의’를 고수하겠다는 얘기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지난 5월11일 아베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겨냥했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그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민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재협상하자고 하진 않았으니, 이간질 간계나 꾸미는 한줌의 무리나 바보 범주에 속하진 않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런데, 재협상이라니? 애초에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협상으로 해결한다는 발상부터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치의 홀로코스트 죄업 처리가 정부간 협상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식민지배, 일본군 ‘위안부’와 징병·징용, 참혹한 명성황후(민비) 시해나 의병·독립투사 학살, 난징 대학살이 협상과 돈 몇 푼으로 종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독일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한맺힌 감정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고 조건없는 자발적 보상에 나선 뒤에야 풀리기 시작한 것 아닌가. ‘위안부 문제’가 피해 당사자들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정부 관리들간 정치적 협상 뒤 최종 해결됐다고 선언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그건 인류 보편 가치가 걸린 문제이고, 일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본의 문제’다. 일본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그 짐을 계속 지고 갈 수밖에 없고 미래지향적 동아시아 재건도 좌초할 것이다. 그런 맥락 위에서 이간질 간계나 꾸미는 한줌 바보들이 진짜 누군지 다시 물어야 한다.
이간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드 강행 배치야말로 이간질의 또 다른 전형이 아닐까? 그걸로 남북관계는 더 경색되고 한중관계도 흔들리고 한반도 분단선을 경계로 신냉전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비상사태를 틈타 허겁지겁 사드를 배치한 미국 속셈이 뭘까?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을 지낸 마고사키 우케루가 <일본의 영토분쟁>(메디치미디어·2012)에서 일본-소련(러시아)간의 이른바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방해한 게 미국이라고 폭로했다. 이시하라 ??의 <군도의 역사사회학>(글항아리·2017)의 다음 일절도.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일본에 부여한 미국은 일본이 제멋대로 소련(러시아)이나 중국 또는 한국이나 북한과 화해하지 못하도록, 또한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의 미군 주둔권을 계속 정당화하기 위해서, (…) 옛날 일본에 병합당했던 섬들에 영토분쟁의 불씨를 키웠다.”
2차대전 뒤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목표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영구 해체해 동족불화를 심화시키고 남쪽 절반을 일본과 통합시킨 뒤 미국 지배를 영속화하는 친미적 한일연방국가를 만드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미국은 ‘이간질’과 압박책을 번갈아 집요하게 구사했다. 사드 배치 목적은 안보불안 제거가 아니라 그 반대가 아닐까. 그런 의심 지우고 싶다면, 미국이 도로 가져가길 바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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