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7 18:56
수정 : 2017.08.17 19:17
한승동의 독서무한
‘석봉 한호의 간찰’이란 제목을 붙인 한문 초서로 된 명필 한석봉의 편지 속에 이런 구절. “저는 우봉에서 처자를 만났으나, 생사도 장담할 수 없고 복명(復命)할 기약도 분명하지 않으니, 어느 날에야 뵙고 절할 수 있을까요? 굶주려 죽을 기미가 처음 난리가 났을 때보다 심하니 세도(世道, 나라형편)가 더욱 한탄스럽습니다.”
왼쪽의 번역문 위에 따로 넣은 해서체 정자의 해당 구절을 보니 그 대강의 뜻을 알 만한데, 오른쪽 초서체의 원문은 딴판이어서 그것만 봤다면 난해했을 것이다. 한석봉(1543~1605)이 말년에 임진왜란을 만나 피난 중에 겪은 일을 얘기하며 소식을 전하는 편지인 듯한데, 전란 초기보다 더한 말기의 처참이 그의 편지를 통해서도 감지된다.
왼쪽 번역 및 간단한 해설, 오른쪽 원문, 이렇게 한 편당 두 쪽씩으로 편집된 조선 사대부의 초서 간찰(簡札, 편지) 모음 <제가유독(諸家遺牘)>(한국고간찰연구회 편역, 도서출판 다운샘 펴냄). 정조 때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모음의 별책 2첩에 실린, 조선 초부터 숙종 연간까지의 사대부 107명의 간찰을 번역한 것이 이 책이다.
한석봉 간찰 바로 앞은 백사 이항복(1556~1618)의 짤막한 새해 안부 간찰. 이것 역시 번역문 쪽 해서체 정자를 보면 대체로 내용을 짐작하겠는데 오른쪽 원문은, 흘림체지만 단아한 명필의 품격이 느껴지는 한석봉의 그것과는 또 다른 초흘림체. 원문만 봐서는 단 한 글자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고담 이순인(1533~1592)의 칠언절구 역시 품격이 느껴지는 명필이지만 초서 원문만 봐서는 도무지 내용을 짐작조차 못하겠다.
<제가유독>은 사단법인 한국고간찰연구회(이사장 유홍준)가 펴낸 ‘초서독해 시리즈’ 네 번째 책인데, 이 연구회의 초서독해 시리즈 첫 번째 책 <옛 문인들의 초서 간찰>(2003)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1999년 3월 이광호(국제퇴계학회 회장) 김종진(전 동국대 한문학과 교수)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임재완(전 태동고전연구소 전임연구원) 김경숙(조선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등 몇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초서 공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청명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모르는 글자가 나와도 여쭈어볼 곳조차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맥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한숨어린 자조의 소리조차 나왔다.”
그렇게 해서 결당한 것이 ‘말일파초회(末日破草會)’. 글자 그대로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모여 초서를 독파하던 이 모임이 한국고간찰연구회의 시작이다. 4·19혁명 때 교수 데모에 앞장서기도 했던 당대 한학의 대가요 역사학자, 금속학자, 서예가였던 청명(靑溟) 임창순(1914~1999)의 지곡서당에서 배웠거나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 20여 명이 지금도 초서 독파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지금 이 땅의 사람들 대다수가 불과 한두 세대 전 선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문자(한자, 한문)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현실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먼 과거는 물론 불과 얼마전에 남겨 놓은 무수한 전적들, 하다못해 마을 곳곳에 서 있는 비석이나 전각 속의 비문조차 무슨 얘기를 담고 있는지 지금 대다수 후손들이 도통 알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한글전용과 한문교육이 양립 불가능한 모순관계는 아닐 것이다. 초서까진 아니더라도, 전문가 아닌 보통사람들도 선조들 문자를 자력으로 해독하게 해줄 교육체계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