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4 18:48
수정 : 2017.09.14 19:11
한승동의 독서무한
자공이 공자께 물었다.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풍족한 식량, 충분한 병력, 백성의 신뢰(民信)가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경우, 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립니까?” “병력을 버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경우, 이 둘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립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사람은 모두 죽으나,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논어집주> 안연편, 박성규 역주/소나무, 2011)
공자는 정치를 한다면 무슨 일부터 하겠느냐는 자로의 질문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말)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고,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다.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주장을 했으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기주장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논어집주> 자로편) “군자는 자기주장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말과 통한다.
일전에 중국에 큰돈을 투자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중국에 투자한 이들이 합동으로 한국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임무인데, 정부는 국민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를 일방적으로, 그것도 대통령 탄핵정국이라는 비상시국에 기습적으로 배치해 중국의 반발을 사고 그 때문에 자신들의 중국 투자를 다 날리게 생겼으니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지금 일이 되어가는 꼴은 결과적으로 전임 정부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효력이 제대로 검증된 바 없고, 더욱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에선 무용지물이라고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사드를, 그 많은 돈을 들여, 그 많은 반대와 국론 분열을 무릅쓰고 배치를 강행하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미국 내에서조차 돈만 잡아먹는다는 비판이 많아, 일본이 가세하지 않으면 추진되기도 어려울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 한국을 위해서인가, 한국의 이익을 희생시키고라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또는 미일동맹, 아니면 무기산업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것인가. ‘그것마저 감내하는 이유는 힘센 미국에 겉으로 숙이고 실익을 얻기 위한 방책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은 차라리 눈물겹다.
남북관계나 사드 문제에 일일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게 해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집권당과 정부의 전략 부재를 비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완전히 아베(일본 총리)처럼 돼가고 있다”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쓴소리를 했다. 잘 활용했으면 득이 됐을, 사드와 한미 연합훈련 축소 조정 가능성에 관한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을 청와대의 뜻이 아니라며 서둘러 부정한 속내도 알기 어렵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국회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의당의 행보는 그 당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회의하게 만들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현 정부의 정당성을 반증해온 자유한국당의 반면교사적 행보는 족히 거론할 바가 못 되지만, 그런 졸렬한 우행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민주당과 정부가 답답해 보인다. 정명과 신뢰가 그립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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