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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의 독서무한] 마땅히 미국의 의도를 의심할 것 |
댓글부대 운용에다 전직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까지. 특정 정권의 하수인이 돼 사유화한 권력과 이권 안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기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길이길이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고도 남을 국제토픽감이다. 망가져도 어찌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가 있나.
박노자가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에서도 언급했듯이, 박정희의 압축적 경제성장 정책은 쿠데타로 집권한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극단의 한반도 동족대결 체제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사회경제적으로 크게 앞선 북을 이기겠다는 것이 남쪽 역대 정권 최대의 집권 이유이자 프로파간다였던 시절에, 토지개혁이나 산업화는 무조건적 지상명령이었다. 극렬 반공주의와 동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반쪽짜리 민족주의, 맹목에 가까운 미국 편향을 특징으로 한 군사정권의 경제개발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자멸적 위기에 봉착했다.
1979년 궁정동 안가의 총성은, 경제성장 세례 속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가 그 성장을 닦달해온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함성 속에 울려 퍼진 조종이었다. 그럼에도 냉전체제에 편승했던 그 억압체제는 1990년대 초까지 신군부의 무력에 의해 유지되다가 냉전 붕괴와 함께 무너졌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냉전과 전체주의적 성장일변도 정책에 토대를 둔 체제가 더는 통용될 수 없게 된 시대변화의 징표이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등장은 그런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오랜 군사정권이 양산해낸 기득권층과 그 적자(嫡子)들이 공모한 대반격의 결과물이었다. 독점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던 그 반격과 반동은 숱한 뒷걸음질과 부패를 양산한 끝에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의해 다시 저지당했다. 하지만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기득권층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해온 보수 야당과 언론의 치졸한 트집잡기 행태가 예고하듯 앞으로도 반격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저들의 반격은 동아시아 냉전체제 유지·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일동맹의 보수반동과 맞물려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등장은 일본 아베 신조 정권(1차 내각) 등장과 버락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과 시기적으로도 상응한다.
2007년에 나온 신우용의 <한미일 삼각동맹>(양서각)은 국제정세와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고, 다양한 정보와 깊고 개방적인 사고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거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군사)동맹을 강화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1990년대 말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시절의 한일 유화 국면을 반영하는 듯한 그 주장은 극우 민족주의를 앞세운 아베 정권의 보수반동 회귀, 이런 일본을 적극 밀어주며 활용하려는 미국의 행보로 타당성을 잃었다. 거대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한일 군사동맹 및 한미일 삼각동맹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야기할 동아시아 신냉전체제는 한반도 분단과 남북 동족 대결을 영구화하고, 피비린내 진동한 근대 이후 침략주의로 확보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일본 우익세력에게 기사회생의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그 최대 피해자는 결국 또 남북한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일본과 더욱 밀착해가는 미국과 거기에 빌붙고 편승하려는 ‘박정희 사도’들의 의도를 우리는 마땅히 의심해야 한다.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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