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한반도 개입 그만둬야 |
한승동의 독서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중 청와대 만찬장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초청하고 ‘독도 새우’를 올린 것은 잘한 일이었다. 일본 조야가 발끈하며 후안무치하고 유치한 내정간섭적 발언들을 쏟아놓은 걸 보면 일본 우파가 그 문제들에 얼마나 안달하고 당혹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들에 대한 미국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트럼프가 한국 국회와 청와대에서 마치 한국의 보호자요 구원자처럼 행세한 것은 꼴불견이었다. 얼마전 마이클 혼다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도 얘기했지만, 1951년의 미일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그 문제들을 어떻게 은폐, 왜곡했는지 면밀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 미국은 증거 명백한 위안부 강제연행, 731부대 만행 등 일본의 범죄사실을, 당사국들과 국제사회의 진상규명 및 처벌 요구에도 덮어버렸고, 한국 영토인 독도의 소속을 얼버무려 지금의 문제를 만들었다.
“(냉전으로) 미국은 일본을 자신의 패권하에 있는 동아시아의 속주총독국으로, 독일을 유럽의 속주총독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혹은 ‘세례’를 주었다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트럼프의 일본 방문 때 아부에 가까운 아베 신조 총리의 접대를 두고 <워싱턴포스트>가 그를 “트럼프의 충실한 조수”니 "전략적 노예"라고 조롱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감하게도, 전범국 일본 대신 분단당한 한국은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국가였을 뿐이라고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전승희 옮김, 후마니타스, 2016)에서 지은이 장순(82)은 썼다.
“이 두 종속 지구들(독일과 일본)은 자신들이 생산한 전쟁물자 중심의 공업 생산품을 저개발국의 네트워크에 판매함으로써 각 지역에서 생산과 무역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었다. 지역적 통합이란 과거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이 재생된다는 것, 그리고 그 지역 내의 주요 부분인 한국의 원료와 노동력이 일본 산업의 수요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순은 15살 때 미국으로 가 조지타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연구원, 리지스 칼리지 교수, 베이징대 객원교수 등을 지낸 재미동포 학자다. 그는 바로 박정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당한 제2공화국 총리 장면의 넷째 아들이다. 그는 마이클 샬러의 <미국의 일본 점령-아시아 냉전의 기원>을 인용하며 덧붙였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재산업화라는 과제에 종속된 존재, 즉 일본 보호를 위한 방패인 요새국가이자 원료와 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공급원으로 취급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종속국가-로 취급되어야 했다.”
박정희와 추종자들이 줄창 주장해온 산업화니 ‘한강의 기적’은 그런 미국 전략을 빼 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한국 민중은 4.19혁명에서부터 촛불혁명에 이르는 저항과 봉기를 통해 그 성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쟁취해냈지만, 장순은 한국 전쟁도 미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직후에 감행한 무참하고 일방적인 한반도 분단만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역설적이게도, 박정희조차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쓴 <국가와 혁명과 나>(1963)에서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심대한” “우리의 고난”인 국토 분단이 “미국을 비롯한 전승국들의 전후 조치에서 기인”된 것이라며, 한국전쟁도 “분단의 씨로 뿌려진 소산”이라고 했다. 한반도 40년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도 미국이었다.
70년을 넘긴 “고난”은 이제 끝내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 개입을 그만둬야 한다.
한승동 책지성팀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