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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4 20:53 수정 : 2015.06.02 14:27

장정일 소설가

장정일의 독서 일기

탄샹싱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중앙엠앤비(2003)

술의 나라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책세상(2003)

붉은 수수밭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문학과지성사(2014)

모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가운데 단연 최고다. 그것은 번역자 박명애의 노고로 알게 된 <탄샹싱>과 <술의 나라>만 읽어도 충분히 입증된다. 전자는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한때 ‘탄사모’(탄샹싱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야겠다고 별렀던 작품으로, 이 소설을 처음 읽은 2007년 10월3일 일기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우리 소설은 어디쯤 와 있나?” 한편 작가 스스로는 가장 완벽한 장편이자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으로 후자를 꼽았다.

아직 한 번도 세계 최고 수준의 소설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바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 원작으로 널리 알려진 <붉은 수수밭>이다. 원래 이 작품은 같은 제목 아래 다섯 편의 중편이 함께 묶인 연작 성격을 지닌 장편이다. 장이머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중편에서, 할머니(다이펑롄)와 할아버지(위잔아오)가 만나게 된 내력과 1939년 8월 가오미 현 둥베이 지방에서 벌어진 항일 투쟁만을 추출해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의 작품에는 공산당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꽤 노골적인데, 장이머우는 그것을 바로 묘사하지 못하고 매우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붉은색채는 항상 폭력과 연관되어 있는데, 중국 공산당의 상징적인 색상이 바로 붉은 색이다.

청나라가 중화민국으로 바뀌고 중국 대륙이 일본의 침략을 받으면서 중국은 내란에 휩싸였다. <붉은 수수밭>은 국민당의 기회주의를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산당을 예찬하지도 않는다. 위잔아오는 “마오쩌둥? 이 몸은 그런 사람 모르고! 이 몸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아!”라며 공산당과 거리를 둔다. 물론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은 이런 대목을 공산당 비판으로 수용하기보다, 항일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의 지도가 필수적이었다는 증거로 채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민의 영웅이었던 위잔아오의 철저한 몰락은 공산당에 냉담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일방적이기 짝이 없다.

세 번째 중편에는 주인을 잃고 야수로 변한 700마리의 개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홍구·초록이·검둥이로 나누어 세력 다툼을 벌이는데, 한껏 의인화되어 있는 개들의 파벌 투쟁을 평정한 것은 가장 교활하게 묘사된 홍구다. “개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한데 얽혀 짜여 있”으며 “세상은 진보하지만 그와 동시에 종(種)은 퇴화한다”고 말할 때, 모옌은 공산당의 역사발전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문명과 이념에 억눌린 원초의 세계를 편들고 있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모옌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로부터 ‘정부의 꼭두각시’니 ‘공산당의 도구’니 하는 등의 비방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책 말미에 실린 약력에도 나오듯이, 1987년에서 1995년 사이에 모옌은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작품이 실린 잡지가 몰수되거나 단행본이 발행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60회 분량으로 제작된 드라마판(版) <붉은 수수밭>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모옌에 필적하는 작가는 중국에 수두룩하지만, 한국에는 없다. 한류(韓流)가 한류(漢流)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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