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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1 20:52 수정 : 2015.06.02 14:05

장정일의 독서 일기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돌베개, 2014)

히틀러의 철학자들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여름언덕, 2014)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아카넷, 2011)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밀턴 마이어 지음, 박중서 옮김(갈라파고스, 2014)

작년에는 눈에 띄는 히틀러나 나치 관련서가 많이 나왔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등극한 사회 심리를 밝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히틀러의 생애다. 지은이가 히틀러의 56년 생애를 설명하는 열쇠말은 ‘결핍’이다. 히틀러를 특징짓는 것은 게르만 민족의 비상이라는 원대한 포부였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삶’ 이면에는 한 인간의 삶에 품위를 부여하는 바닥짐이 아예 없다. 그의 삶에서는 교육·직업·사랑·우정·결혼·부모노릇 따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도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 외에는 모두 번뇌”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 개인이 더 많은 사생활을 가지기를 원한다.

이본 셰라트의 <히틀러의 철학자들>은 히틀러와 나치의 출현에 독일 철학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문화에서 영화와 로큰롤이 절대적인 것처럼, 독일 전통에서는 철학자들이 유명인사였다. 철학자들의 사상과 행동방식은 독일인들의 사고와 창의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히틀러는 “내 즐거움은 오로지 한 가지, 독서뿐”이라고 할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그는 괴테·실러·헤겔·피히테·칸트·쇼펜하우어·니체 등을 탐독했고, 자기 나름으로 독일 철학을 ‘편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나치의 공식 교과서인 <나의 투쟁>이다. 모순되게도 히틀러는 철학을 나약한 것으로 깔보면서도, ‘선전포고’만큼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평자들은 히틀러가 위대한 철학자의 논리나 문장이 가진 맥락과 본의를 마구 왜곡했다고 헐뜯지만,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칸트는 철학적 종교론을 구성한다는 빌미로, 유대교와 유대인을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자연과 혈통을 중시한 히틀러는 칸트의 이성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반유대주의는 반겼다. 히틀러가 나치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벌일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독일 민족주의·반유대주의·사회진화론·영웅주의를 부채질한 수많은 독일 철학자들의 사상이 연관되어 있다. 지은이의 고발장은 좀 더 정교한 후속 연구를 기다린다.

장정일 소설가
1955년에 출간된 밀턴 마이어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한나 아렌트가 1961년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하고 떠올린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선취한 노작이다. 지은이가 밀착 취재한 나치 시대의 진실은, 7000만 독일사람 중에 6900만이 ‘평범한 나치’였으며, 그 가운데 미쳐 날뛰는 광신적 나치는 100만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평범한 나치는 취업과 사회적 안정을 목마르게 찾으면서 승진이나 주변의 인정과 같은 사소한 실리에 밝았던 소시민이었다. 이들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말썽 없이 처신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저울질했다.

히틀러나 나치 관련서가 이처럼 많이 출간되는 이유를, 박근혜 시대와 히틀러 시대 사이의 유비에서 찾는다면 과장일까? 나는 지난해 12월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나치가 저지른 ‘수정의 밤’과 같은 폭거라고 생각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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