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 일기
괴물의 심연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더퀘스트 펴냄(2015) 제임스 팰런의 <괴물의 심연>은 저명한 뇌과학자의 사이코패스(psychopath) 연구서다. 이 용어는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널리 퍼졌지만 정신의학자들의 성경이라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편람에서 사이코패스에 가장 가까운 건 반사회성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는 “사회규범을 지키지 못한다. 사기성이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쉽게 흥분하며 공격적이다. 타인의 안전을 무시한다. 무책임하다. 자책할 줄 모른다” 가운데 3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킨 사람이다. 이보다 더 정교한 사이코패스 점검표가 PCL-R이다. PCL-R 점검표는 전체 20개 항목별로 ‘사이코패스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0점)’ ‘부분적으로 존재한다(1점)’ ‘확실히 존재한다(2점)’로 점수를 매긴다. 40점 만점을 받으면 명백한 사이코패스로 분류되고, 25~30점은 경계선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PCL-R에 대한 보완책으로, 뇌와 유전자 검사를 병행·종합할 것을 제안한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피질이 손상되어 있거나 저조한 활동을 보인다. 그 결과 자기 억제, 사회적 행동, 윤리, 도덕성은 무뎌지는 대신 냉정하고 대담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범죄자 분석 기법을 확립한 로이 헤이즐우드와 스티븐 미초드의 <프로파일러 노트>(마티, 2015)를 보면, 단 한 번의 범죄로 들통이 나는 우발적 범죄자와 달리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태연하게 연쇄살인을 계속해 나간다. 제임스 팰런은 그 이유를 감정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부재와 차가운 이성 능력을 유지하는 뇌 호르몬 활성에서 찾는다. 딱히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더라도, 이 두 가지 조합은 대인 공감 능력을 찾을 수 없는 사이코패스 아류를 만든다. 지은이는 “우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는 과학적 확신으로 무장하고, 환경의 힘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관점을 물리쳐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뇌를 찍은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 사실에 촉발되어 자신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선조가 살인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냉정한 인물평을 구한 결과, 그 자신이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무지막지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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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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