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재즈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문학동네 펴냄(2015) 토니 모리슨의 <재즈>는 “츳, 나는 그 여자를 안다”는 말로 시작한다.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나’라는 화자가 말하는 여자는 바이올렛이다. “나는 그녀의 남편도 안다. 열여덟살 소녀와 사람을 죽도록 슬프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만드는 그런 깊고 무시무시한 사랑에 빠졌던 그는 단지 그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소녀를 총으로 쏘았다.” 바이올렛은 남편이 사랑한 소녀의 얼굴에 칼질을 하려고 장례식에 갔다가 쫓겨났다. 소녀를 쏘아죽인 남자 조를 고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하루 종일 울기만 하니까, 그 자체가 이미 감옥과 다름없는 삶이니까.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조와 바이올렛 부부의 모습은 완전히 황폐해져 버린 가정을 예견하는 듯했고 실제로 두사람은 각자 울면서 지냈다. 어느날 바이올렛은 거리에서 또 다른 소녀 펠리스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 거리에서 추문거리가 된 삼각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이 책의 초반에 다 나와 버린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나’는 말한다. “내 말을 믿어라. 그는 이미 갈 길이 뻔한 셈이다. 블루버드 레코드판 홈을 따라 움직이는 바늘처럼 그는 끌려간다. 그 도시를 돌고 또 돌게 되어 있다. 도시는 그런 식으로 당신을 끌고 다니게 된다. 도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고 놓인 길을 따라서만 걸어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더 필요한가? 세상사란 처음에 전개될 듯한 방향으로 예상대로 전개될 텐데. 이제 등장인물 모두는 차례차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등장인물 모두가 한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마치 과거가 현재를 알고 이해하게 하는 거울인 것처럼.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지? 너는 너 자신을 어떻게 다루었지? 고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지? 그들은 용감하게 과거를 데리고 와서 (독자라기보다는) 관객인 우리와 함께 처음부터 다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떻게 우리는 그 슬픈 과거를 벗어날 수 있지? 어떻게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지? 마침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바로 그 상황에서 바이올렛은 펠리스에게 말한다. “지금 사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지 않니?” “그게 뭐 중요한가요? 어차피 내가 바꿀 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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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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