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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6 19:29 수정 : 2017.03.16 19:42

정혜윤의 세벽세시 책읽기

그리스의 끝 마니
패트릭 리 퍼머 지음, 강경이 옮김/봄날의책(2104)

패트릭 리 퍼머의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기 <그리스의 끝 마니>에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장례식장에서 불리는 ‘만가’에 관한 것이다.

마니 사람들에게 죽음은 그냥 ‘끝’이다. 사후 세계는 없다. 가슴 찢어지는 이별의 고통과 상실만이 남는다. 애도는 여자의 몫이다. 촛불을 밝히고 망자를 둘러싼 여자들이 밤새 울부짖으며 곡을 한다. 남편이 죽었으면 부인은 손톱으로 자기 뺨을 할퀸다. 눈물과 피가 흐른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무덤 속으로 관이 들어갈 때인데 비명을 지르며 무덤으로 몸을 던지는 부인을 힘으로 제지해야 할 때도 있다. 조문 기간에 부인은 비통해도 하지만 말을 쏟아놓기도 한다. 전사 중의 전사였어요. 얼마나 착한데요. 마을의 최고 멋쟁이였어요. 리라를 얼마나 잘 타는지 활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말끝에 흐느낌이 스며들면 주위 사람들이 부인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수많은 격려와 위로에 힘입어 차츰 체념이 자리 잡는다.

시의 운율을 지닌 만가(운명의 노래)는 마니에서만 볼 수 있고 무덤가에서 불린다. 여자 중 최고참 상주가 가슴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다른 여자들이 차례차례 이어받는다. 유족을 위로하고 찾아온 손님들을 칭송하고 망자에 대한 찬사를 통곡으로 노래한다. 망자에게 보호자 없이 남겨진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도 언급된다. “이제 누가 그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 망자의 직업에 쓰이던 연장들도 언급된다. 망자가 목동이었다면 “암양과 숫양은 어떻게 슬픔을 달랠 것인가? 그의 지팡이와 물병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죽은 주인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만약 학교 선생님이었으면 칠판과 분필이 나온다. 집에 있는 모든 것, 탁자와 의자, 손절구, 베틀, 올리브 이파리, 선인장 가시까지 모두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태양과 그들의 달이 사라졌으니, 그 이파리들에 살랑대던 부드러운 바람이 떠나갔으니….”

그리스 마니에서 나는 직접 이 ‘만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월호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어떻게 살고 있소? 그 아이들의 형제자매는 어떻게 살고 있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고 있소? 그 아이들의 방은 어떻게 되었소? 그 아이들이 쓰던 물건은? …” 마니의 노인들은 나쁜 놈들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을 위해서는 깊은 한숨을 남겼다. 4월5일에 세월호 선체 인양이 시도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실 유족들은 이미 세월호에 수없이 들어가 봤다. 잠 못 이루는 밤에 꾸는 꿈속에서, 그리고 술 취한 밤 정신이 흐릿해질 때, 돌아가야 할 곳은 세월호뿐일 때가 있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것도, 찾아야 할 것도 다 검은 바다 속 세월호에 있는 것처럼. 우리 다 같이 4월5일 목포항의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자. 그곳에는 진실과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아홉명의 미수습자, 힘세고 날쌔고 건강한 아이들이 탈출하기 위해 했던 절박한 시도들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주인 잃은 책가방, 신발, 몸의 일부, 이빨, 핸드폰…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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