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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0 18:34 수정 : 2015.07.17 21:47

[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4)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하)

(지난회 내용 요약: 고깃집에서 떨어진 불판에 중학생 아들이 화상을 입었다며 최사장과 정업원을 상대로 5천만원 손해배상소송을 건 사모임. 1심 판결 패소에 앙심을 품은 사모임이 돌을 던져 가게 유리창을 박살냈다며 영업방해로 1억원 맞소송하겠다는 최사장. 원만한 해결 종용하는 재판장 한 부장은 박 판사에게 조정을 일임하지만, 양쪽이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았음을 안 박 판사는 다음날 조정실에서 합의서를 찢으며 다시 재판을 하자고 말하는데…)

“그래, 그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를 찾기 위해 무슨 증거를 더 조사하시려고?” 한세상 부장이 물었다.

“…최소한 당사자 본인들은 진실을 알겠죠.” 박차오름 판사의 대답이었다.

“당사자본인신문을 해보시겠다? 이렇게 원수 지경이 되어 싸우는 사건의 항소심에서?”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부장님.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최선은 다해보고 싶어요. 이대로 입증책임에 따라 형식적인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형식적인 결론? 그래, 우리 위대한 정의의 여신 박 판사님께서 칼을 휘둘러보고 싶으시면 하셔야지. 눈먼 칼에 누가 찔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디 멋대로 한번 해봐!”

부장판사실 문이 거칠게 닫혔다.

정업원의 말은 또렷했고
연변 말투도 거의 없었다
최사장이 놀라 쳐다보았다
정업원은 힘겹게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왜 아들을 원고에서 뺐냐는
박 판사 질문에 묵묵부답이던
원고 사모임의 입술 사이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파서요.” “네?” “아파서요.”

“피고, 스치지도 않은 게 맞나요?”

“2015나51623호 사건 나오세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피고 최사장, 피고 정업원, 원고 사모임이 앞으로 나왔다.

한 부장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내뱉었다. “당사자본인신문을 실시하겠습니다. 세 분 모두 오른손을 들고 피고 최사장이 대표로 선서서를 낭독하세요.”

“네? 선서서라고 하시면….” “거기 증인석 위에 있지 않습니까.”

“네. 선! 서!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 진술을 하면 그에 대한 제재를 받기로 맹세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우렁찬 선서가 끝나자 한 부장은 팔짱을 끼더니 박 판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박 판사가 말문을 열었다. “네, 주심판사인 제가 신문을 진행하겠습니다. 대질신문으로 동시에 진행하려고 하니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판사님! 저부터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최사장 피고는 불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보신 것도 아닌데 무슨 말씀을….”

“우리 정씨 아주머니는 조선족이고 평소 말수도 없어서 말이 서툴 테니 제가 설명드릴게요. 그때 저는 카운터에 있었어요. 근데 테이블 쪽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길래 놀라서 바로 뛰어가봤죠. 불판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학생을 이리저리 살펴봤죠. 아무렇지도 않던데요? 요란한 소리에 좀 놀랐을지는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기스 하나 없이 말짱하더란 말이에요.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정씨 아줌마한테 잔소리를 좀 했죠. 아 왜 불판을 떨어뜨리고 난리냐고. 조심 좀 하라고.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학생을 부둥켜안고 요란을 떨고 있던 이 아주머니가 빽, 소리를 치는 거예요. 애가 불판에 맞았는데 어떡할 거냐면서. 그래서 정씨 아줌마한테 정말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펄쩍 뛰는 거예요. 학생한테는 스치지도 않았는데 뭔 소리냐고요.”

“피고 정업원씨, 스치지도 않은 게 맞나요?”

정업원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사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아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생각했죠. 또 삥 뜯으려는 인간 만났구나, 지긋지긋허다. 그래도 꾹 참고 고기 일인분 서비스 드릴까요? 했더니 아주 발악을 하는 거예요. 누가 보면 무슨 중환자 나온 줄 알겠더라고요. 저도 더이상 못 참겠어서 소리 좀 질렀죠. 억지 부리지 말라고. 정 억울하시면 경찰 부르자고. 경찰 소리 나오니 학생이 지 엄마 옷자락을 잡아당기더라고요. 무섭기도 하고 창피한 거죠. 중학생인 것 같던데 안 창피하겠어요? 그때서야 저 아주머니도 꼬리 내리고 아무 말 없이 휙 나가버리더라고요. 먹는 장사 하다 보면 이런 일이 허다해요. 국에 머리카락이 빠졌다는 둥, 반찬이 상했다는 둥, 고기 그램 수가 틀리다는 둥. 서비스 일인분 준다고 그러면 금세 헤벌쭉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더라고요. 판사님, 저희 같은 서민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에요. 퇴직금 다 털어넣고 대출받아서 가게 차렸는데, 장사는 안 되지, 진상은 많지, 신의도 없이 수시로 그만둔다고 성화 부리는 조선족 아줌마들은 호시탐탐 삥땅할 것 없나 살피지. 치매 걸린 노인네 요양병원비 대느라 허리가 휘는데 건물주는 세 올려달라 성화지. 이젠 악밖에 남은 게 없다니깐요.”

최사장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울음기마저 섞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던 박 판사의 시선은 그를 지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업원에게 머물렀다.

“피고 정업원씨, 재중동포시지요?”

“동포? …하이고, 동포란 말 참 좋네요. 내 이 나라 와서 거룩한 동포 양반들한테 눈물겨운 동포애 참 많이많이 받았네요. 동포고 뭐고 일없고, 나는 그냥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임다.”

정업원의 말은 또렷했고 연변 말투도 거의 없었다. 최사장은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나이 열여섯에 브로커 따라서 전남 장성, 나이 오십 먹은 중늙은이한테 팔려 온 건지, 시집온 건지 와서는 낮에는 허리가 휘도록 농사일하고, 밤에는 또 밤대로 시달리고, 얻어맞고. 어린 나이에 애가 들어섰다가 유산한 것만도 두번인데 시어머니에 시누이들 몸종 노릇 하랴, 종일 밭일하랴 몸은 망가져만 가고. 결국 못 견디고 집 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산 지 오래임다. 직업소개소 사기꾼놈들한테 피 같은 소개료 떼인 것만도 여러 번이고. 식당일 한다고 우스워 보이는지 새파란 것들이 반말하고, 음흉한 노인네들은 엉덩이 슬쩍슬쩍 만져대고, 잘난 아줌마들은 손님이 왕인데 부르면 빨리빨리 튀어오지 않는다며 길길이 날뛰고. 전 모국에서 하루하루가 이리 천국인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본 것같이 부티 귀티 나는 저 아주머니는 지 아들이 무슨 황태자인지 금지옥엽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오만 호들갑을 떨고 유세를 떨고 그러데요. 다 큰 학생을 무슨 갓난애처럼 끌어안고는….”

최사장이 끼어든다. “그러니깐 말이에요. 오바도 그런 오바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경찰 부르자니까 슥 도망가놓고는 석달이나 지나서 뜬금포도 유분수지 오천만원 달라는 소장을 휙 던져놓고. 그것도 귀하디귀하신 자제분은 코빼기 한번 안 비치고. 어디 얼마나 심히 다치셨는지 궁금하다니까요.”

“돌아보니… 오줌을 지렸더군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박 판사가 원고에게 물었다. “원고 사모임씨, 소송을 제기하면서 아드님을 원고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직접 피해자는 아드님인데.”

최사장이 또 끼어들었다. “중학생이나 된 다 큰 아들이 아기로 보이나보죠. 하긴 엄마 옷자락만 부여잡고 있는 게 아기 같긴 하더라고요. 이건 뭐, 지진아도 아니고. 하여튼 과잉보호하는 엄마들이 문제라니까요.”

“최사장 피고! 어디서 함부로 막말입니까! 지진아라뇨. 당장 원고에게 사과하세요!”

아무 말 않고 있던 한 부장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자 최사장이 움찔했다. “미안합니다.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앞선 박 판사의 질문에 묵묵부답하고 있던 원고 사모임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파서요.” “네?” “아파서요. 물어보셨잖아요. 왜 아이를 원고에 포함시키지 않았느냐고요.” 사모임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그렇게도 궁금들 하시면 말씀드릴게요. 제 아이는 아픈 아이예요. 마음이요. 덩치는 커가도 마음은 어린애인 채로 남아 있는 아이예요. 그뿐인데 사람들은 정박아니 지진아니 하는 모진 말들로 부르더군요. 그래서 싫었어요. 애가 이 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게요. 그래서 제 심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 청구한 거예요.”

최사장도 정업원도 놀란 눈으로 사모임을 쳐다보았다. “저희 애는 어릴 때 뜨거운 냄비를 만졌다가 손을 덴 적이 있어요. 그래서 갈비를 너무 좋아하면서도 숯불이 무서워서 고기를 집어오지 못해요. 제가 집어다가 접시에 놓아주죠. 그런 애 머리 위에서 불판이 떨어졌어요. 하나님이 도우셔서 볼을 살짝 스치기만 했지, 순간 얼마나 애가 놀랐을지 전 알아요. 게다가 불판이 떨어지면서 숯불에서 불똥이 애 쪽으로 튀었어요. 아이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서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더군요. 그런데 저 아저씨는 달려와서는 애는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아줌마한테 잔소리부터 하고. 저 아줌마는 절 뻔뻔한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고. 제가 화를 내니까 저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경찰을 부른다더군요. 제가 도망갔다고요? 아이가 제 옷자락을 자꾸 잡아당기기에 돌아보니… 오줌을 지렸더군요. 이혼한 애 아빠가 술만 먹으면 저한테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하는 걸 여러 번 본 애거든요. 겁에 질린 거죠. 그걸 보니 머리가 아득해져서 얼른 애를 데리고 집으로 간 거예요. 다행히 상처가 희미하길래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사모임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았어요. 과학시간에 알코올램프로 뭘 가열하는 실험을 했나봐요. 남자애들이 장난치다가 램프를 엎어서 책상에 불이 붙었대요. 선생님이 얼른 모래를 뿌려서 금방 껐다더군요. 그런데 그만 저희 애가 자리에 얼어붙은 듯 앉은 채로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대요. 애들은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코를 쥐고 난리 치고. 그 후론 우리 아일 전교생이 투명인간 취급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장애아라고 애들이 왕따시킬까봐 제가 몇 번이나 반 애들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선물도 돌리고 했었는데 다 소용없어지더군요.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급식 시간에 함께 밥 먹을 친구가 한명도 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반 애들에게 같이 밥 좀 먹어주라고 하면, 자기도 같이 왕따당할까봐 무섭다 그러면서 다 싫어한대요. 급식실 구석에 우리 애 혼자 멍하니 앉아 있곤 하다가 이제는 아예 급식실에 가지도 않고 혼자 교실에서 엎드려 잔대요. 하루는 애가 저한테 아침밥을 많이 달라고 하는 거예요. ‘난 점심을 못 먹으니까 아침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엄마’ 그러는데….”

법정 안에는 사모임의 울음 섞인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가슴을 칼로 후벼 파는 것 같더군요. 그날 눈이 뒤집혀서 법무사를 찾아가 소장을 썼어요.”

“…미안해요.” 정업원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거짓말했어요. 불판이 학생 얼굴 스치는 걸 봤어요.” 정업원은 넋이 나간 듯했다. “첨엔 학생 얼굴에 상처라도 났을까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치료비 물어줄 돈도 없는데…. 시집에서 도망 나올 때 뱃속에 있던 딸애를 혼자 낳아 키우고 있어요. 쥐꼬리만한 지원금 받아서 겨우 지하 단칸 월세방에 사는데, 애가 천식이라 힘들어해요. 한푼이 아쉬운 판에 사장님은 접시 하나라도 깨면 월급에서 까고, 지난번에는 손님 비싼 양복바지에 찌개 국물 튀었다고 세탁비까지 제가 물어냈어요. 이번엔 정말 큰 사고 쳤구나 싶었는데 상처가 눈에 띄지 않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었는데 사장님이 달려오시니까 덜컥 겁이 났어요. 또 월급에서 치료비 깐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그만….”

입을 벌리고 두 여인의 말을 멍하니 듣던 최사장은 철퍼덕 법정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저 힘들다고 남들 힘든 건 보려고도 안 했네요. 엉망이 된 테이블이며 하얗게 질린 학생 얼굴을 보고는 큰일 났다 싶었는데, 얼른 보기에 별 상처 없어 보이기에 잘됐다는 생각만 했네요. 진짜 괜찮냐, 다친 데 없느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꼬투리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최사장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법정에는 침묵이 흘렀다.

눈물이 뚝뚝, 침묵이 흘렀다

재판은 끝났다. 사모임은 아무 조건 없이 소송을 취하했다. 재판부 세명은 침묵 속에 판사실로 향했다. 앞서서 터벅터벅 걷던 한세상 부장은 부장실 앞에 멈췄다. “박 판사…” 따라오던 박 판사와 임 판사도 걸음을 멈췄다. “…수고했소.” 부장실로 들어가는 한 부장의 등이 평소보다 더 굽은 것 같아 보였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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