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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6 19:22 수정 : 2015.10.23 15:00

gomnme@naver.com

[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0) 직장 내 왕따사건

2014. 11. 2. 가슴이 답답하고 잠을 자면 회사 생각에 잠이 안 옴. 입맛이 없고 설사하게 됨. 하던 업무도 두렵고 출근하기가 무서움. 사무실에 가면 머리가 찌릿, 하던 업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음. 내성적인 성격이 싫어 외향적인 것처럼 행세, 군에 있을 때 비슷한 증상. 적응 못해 탈영, 자살소동.

2014. 11. 7. 부서 전체 회식에 빠졌다고 팀장에게 질책당함. 몸이 무척 안 좋았다고 하니 진단서 제출하라고 함. 조직인으로서의 기본 자세도 안 된 놈이라며 질책.

2014. 11. 10. 팀장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어 견딜 수가 없음. 혼자 색깔 와이셔츠 입고 출근했다고 한참 훈계 들음. 훈계 듣다가 그냥 쳐다보았을 뿐인데 주변 직원들에게 “얘는 ○○도 출신이라 그런지 고집이 세다. 얘 눈빛 봐라. 눈빛이 무섭다”고 하다. 직원들은 그 말에 와- 하고 웃다.

2014. 11. 11. 회사 출근 못하고 있음. 안절부절, 왔다 갔다, 새벽에 깨서 다시 약 복용.

2014. 11. 12. 팀장이 수십 번 전화하다. 무서워 전화를 받지 않자 “너 때문에 팀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 암덩어리 같은 놈”이라는 문자가 오다.

2014. 11. 13. 출근. 동료들과 대화 어려움, 눈 마주치기 힘들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도 말문이 막힘. 출근해도 헛구역질, 손 떨리고 기억력 떨어짐.

임바른 판사는 A의 의무기록 및 정신과 상담일지를 꼼꼼히 읽고 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암울한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진단서, 소견서도 첨부되어 있다. ‘중증 우울증 에피소드’, ‘역류성 식도염, 위염, 십이지장 궤양’, ‘근무 도중 왼쪽 어깨에서 팔까지 경직이 되면서 떨림이 심했고, 퇴근시간 임박해서는 흉통이 심해서 병원에 내원하여 관상동맥조영술 등의 검사를 받았으나 혈관에는 문제가 없고 특이소견 없다는 진단.’

정신과 상담일지를 보다

2014. 11. 14. 손 떨고 안절부절못하자 병가를 내든지 아니면 똑바로 하라고 함.

2014. 11. 24. 1주 휴가 내어 딸과 여행을 다녀온 후 복귀.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김. 떨림은 덜하고 식사 잘함.

2014. 11. 25. 아주 잘 지냈음. 대답이 느리다고 팀장님께 40분 혼났지만 견딜 수 있었음.

2014. 11. 26. 느낌 아주 좋음. 다시 태어난 느낌.

상담일지는 한참의 공백 후 다시 이어진다.

2015. 3. 2. 전 상태로 돌아갔음. 자리에 앉아 있으면 집중 안 되고, 시간에 쫓기고, 들어도 이해 안 됨. 불안, 초조하고 긴장됨. 와이프가 걱정-옛날로 돌아가면 못 산다.

2015. 3. 20. 여행을 다녀옴, 여행 가도 와이프와 대화가 안 됨. 자살충동. 입원 권유.

2015. 3. 23. 출근. 전화 받아도 답변 못 해 다른 직원이 받게 조치, 업무 안 주고 배려해줌. 배려가 소외로 느껴짐.

2015. 4. 3.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 와이프는 애 학원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고.

2015. 4. 29. 먹으면 토함. 빈속에 헛구역질. 새 근무지에 적응 안 됨. 말도 안 나오고 대화는 안 됨.

2015. 5. 15. 출근 못함. 와이프에게 전화 옴. 와이프 몰래 원룸 얻어서 종종 혼자 지낸 것 들통남. 충격, 배신감에 이혼하겠다고. 회사에서도 더이상 못 기다리겠다며 입원 권유.

상담일지는 여기서 끝난다.

A는 다음날 회사 독신자 숙소에서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 출근 안 한 그가 걱정스러워 들른 동료가 피를 많이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고 119에 연락하여 생명은 건졌으나 팔 여러 곳을 자해한 탓에 근육을 다쳐 팔을 못 쓰게 되었고, 마치 자폐증 환자처럼 모든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중증 우울증 상태가 지속중. 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고, 이혼을 요구중. A의 부모는 A를 내세워 회사와 팀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조정기일을 앞두고 기록을 검토중인 임 판사는 A의 삶 전체를 읽는 느낌마저 들었다. 증거로 제출된 것 중에 두꺼운 수첩이 있는데, 꼼꼼한 성격인 A는 마치 일기장처럼 많은 내용을 적어놓았다. 팀장이 괴롭힌 내용 등 사건과 관련된 부분도 있었지만, 자살 시도를 앞둔 몇 주간은 마치 평생을 회고하듯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순서 없이 마구 적기도 했다.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듯 휘갈겨 쓴 글씨가 읽기 힘들었지만 어느새 눈길을 뗄 수 없게 된 임 판사는 공을 들여 찬찬히 읽었다. 타인의 이토록 내밀한 삶 구석구석을 읽는다는 것이 어쩐지 죄스러웠다.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것인데도 임 판사는 가끔 그런 죄책감에 빠져들곤 했다. 사체 부검 사진에서 배를 갈라 풀어헤쳐진 인간 육신의 내부를 볼 때는 오히려 그런 느낌이 없다. 탐욕이든 치정이든 자학이든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의 영혼 내부를 엿보게 되는 순간 마음 한켠에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건 아마 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조정기일에 만난 A는 고장난 자동인형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왼손 검지로 엄지손톱 끝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쓸 수 없게 된 오른팔은 고무줄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왼손잡이였다.

변호사도 있으니 이런 상태의 A가 굳이 나올 필요는 없었지만 A의 부모는 시위하듯 아들을 데려와 조정실 의자에 앉혀놓았다. 회사 측 변호사는 굳은 얼굴이었고, 다부진 체구의 팀장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마주앉자마자 A의 어머니는 핏발 선 눈으로 팀장에게 삿대질을 했다. “남의 천금 같은 아들을 망가뜨려 놓고 어디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있어!” “저는 팀장으로서 팀 전체와 회사를 위해 팀원들을 이끌었을 뿐 어떤 가혹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드님을 구타한 적도 없고 욕한 적도 없다고요. 오히려 팀의 단합을 해치고 피해를 끼친 건, 죄송하지만 아드님입니다. 업무상 질책 좀 했다고 무단결근하고, 회식에 빠지고. 그렇게 나약해서야 어떻게 사회생활을….” “뭐야 이 죽일 놈아!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그게 할 소리야?” A의 아버지가 팀장의 멱살을 잡자 원고 측 변호사가 만류했다. 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누명 씌우지 마십쇼. 자살 시도한 건 가정불화 때문이잖습니까. 이혼당할 지경이 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다면서요.” 팀장은 진심으로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가 쓴 답변서에는 조직적응력이 부족한 A가 팀에 융화되도록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도왔는지, 1등 기업인 B증권에서도 실적 1위인 팀을 이끌며 그동안 얼마나 팀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는지, 이번 일로 팀과 회사의 명예에 누를 끼쳐 얼마나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지가 절절히 적혀 있었다.

팀장 괴롭힘에 자살 시도하다
장애와 우울증 짊어진 A의
부모는 회사·팀장 상대로 손배소
A가 자신의 삶 기록한 수첩이
조정 앞두고 증거로 제출됐는데…

주변의 울부짖음 들리지 않는 듯
조정실서 손톱만 만지작거리는 A
조정은 됐으나 해결되지 않은 느낌
국어 좋아한 그는 왜 법대 갔을까
이혼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가정불화의 비밀

임 판사는 자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A의 부모를 앉히며 물었다. “그런데 아드님의 수첩은 읽어보셨습니까?” “네? 아 그거 증거물로 제출했어요. 저놈이 우리 애를 왕따시킨 게 적혀 있잖아요.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임 판사는 다 읽어보았다. “아드님이 학생 때 국어 과목을 많이 좋아했었다죠?” “네? 그랬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아 네, 별일 아닙니다. 회사 측 주장부터 듣지요.”

A는 고교 시절 유독 국어 과목을 좋아했다. 그것도 문학이 아니라 어학 쪽을. 남들이 진저리를 치는 중세국어의 특징과 변천과정을 흥미진진해했고, 말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구해서 탐독하기까지 했다. 수첩 구석구석에 불어로 ‘랑그’와 ‘파롤’,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낙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교 1등이 국어국문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학교의 명예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법대 아니면 원서를 써주지 않는다는 담임과, 장손이 사법시험 패스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내성적인 A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 애가 원래 판사님처럼 나라를 위해 일했어야 하는 애인데….” A의 엄마는 자기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아들을 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A는 법대에 진학하여 사시를 쳤지만 매번 낙방했다. 집안 어른들이 조상님 전에 아무리 빌어도 효험이 없었다. 코가 납작해진 부모를 다시 의기양양하게 한 것은 사시를 포기한 A가 힘겨운 군생활을 겨우 마친 후 일류 대기업 계열사인 B증권에 합격한 일이었다. A 본인도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을 일류 기업의 일원이 됨으로써 회복할 수 있었는지 그룹 전체 신입사원 연수 때 이야기를 인생의 찬란한 하이라이트처럼 수첩에 묘사해놓았다.

특히 매스게임에 참여했던 경험이 그에게는 엄청난 감동이었나보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운동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신입사원들이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일사불란하게 회사를 대표하는 제품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경험이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혼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인 나 따위도 위대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을 이룰 수 있었다. 나보다 훨씬 우수한 동료들이 나와 어깨를 겯고 하나가 되어 주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사불란함’이 그를 참아주지 않았다. 매사에 꼼꼼하고 느리며 어눌한 그와 해병대 출신임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는 팀장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우수한 팀원들은 모두 아주 빨리 팀장에게 적응했지만 A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흐트러진 단 하나의 실오라기였다. ‘일사불란’을 위해 잘려나가야 할.

피고 측 변호사는 처와의 가정불화, 이혼 위기가 스트레스와 자살 시도의 원인이었음을 계속 강변하고 있다. A의 어머니는 소리 높여 반박했다. 죽자 사자 연애해서 결혼한 애들인데 회사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와서 부부 사이가 망가졌다면서.

사실과 다르다. 일류기업 합격으로 다시 기세등등해진 부모가 중매업자를 통해 ‘수준에 맞는 집안 처자’를 물색한 끝에 찾아낸 ‘점잖은 집안 규수’가 A의 부인이다.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결혼식을 호텔에서 치르느라 A의 아버지는 담보대출까지 받았다. 집안 어른들은 일류대 나와서 일류기업 들어간 장손 혼사인데 사돈댁이 양복이나 두둑한 봉투를 돌리지 않는다며 다들 한소리씩 했다. 이 모든 불만은 며느리에 대한 냉대로 이어졌다.

메뉴 통일? 잠깐만요

혼수 갈등으로 한이 맺힌 처와 처가는 A가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하여 겉돌고 인센티브도 승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처의 여대 동창들 모임에 억지로 끌려나간 A는 동창 남편들이 끌고 온 외제차와 자기 국산차의 배기량 차이만큼 위축되곤 했다. 유일하게 그를 활짝 웃게 만드는 존재인 딸아이는 동네에 새로 들어선 고급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갔다가 너희 후진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라며 쫓아내는 아이들의 텃세에 울며 돌아오고부터는 매일 우리도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며 울어댔다.

A는 아내 몰래 작은 원룸을 빌려 종종 야근, 특근 핑계를 대고 혼자 몇 시간씩 있었다. 그가 거기서 한 일은, 책읽기와 수첩에 뭔가를 적는 일뿐이었다. 그의 이 도피처는 결국 발각되어 그를 결혼생활로부터도 쫓아내고 말았다.

임 판사는 주변의 울부짖음과 고함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듯 모든 신경을 자기 엄지손톱 끝에만 집중시켜 만지작거리고 있는 A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원하는 만큼 홀로 자유로워 보였다.

사건 기사화에 부담을 느낀 회사 측의 양보로 조정은 이루어졌지만, 임 판사는 아무것도 해결한 느낌을 갖지 못한 채 무력감만 안고 조정실을 나왔다. 오늘 점심은 수석부장 주최 오찬에 가야 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수석부장이 먼저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메뉴를 잠시 뒤적이던 수석부장은 웃었다. “고르기 복잡하니까 런치 세트로 할게요.” 그러자 “저도요”, “저도 세트”, “아예 통일하죠, 뭐”가 이어졌다. “아 네, 그럼 런치 세트 12개죠?” 하고 자리를 뜨는 웨이터를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만요. 이거, 키조개 관자를 곁들인 들깨크림스파게티 특이해 보이는데 맛있어요? 해물누룽지스파게티를 먹어볼까? 아이 참. 다들 모처럼 나왔는데 통일이라뇨. 지루하게.”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메뉴를 넘기고 있는 박차오름 판사였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임 판사는 자신이 오늘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곤 웨이터에게 말했다.

“저도 메뉴판 좀 주시겠어요?”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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