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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2) 상처입은 치유자
사실 전적으로 박차오름 판사 때문이었다. 여성 법관들이 대부분인 젠더법 연구회 소모임에 회원도 아니면서 참석한 이유는. 그다지 사교적인 편이 아닌 임바른 판사는 여성 법관 이십여명 사이에 청일점으로 앉아 있는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때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임 판사는 무심코 상처 주는 말을 하고야 마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속마음은 걱정이었는데.
“박 판사님 대학 때 배낭여행 갔다가 당했다는 사고 기사 봤어요. 진짜 그때 함무라비 비석에 머리 부딪히면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에요? 전두엽 손상으로 인한 분노조절장애 같은 거.” “뭐라고요? 절 무슨 정신이상자 취급하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좀 지나치잖아요. 판사가 그렇게 번번이 사건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해서 울고 화내고 하면 되겠어요?”
박 판사는 어제 들어간 조정기일에서 피고와 대판 싸우고 돌아왔다. 자취하던 여대생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월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 노인을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가까스로 취업이 되어 이사를 가야 하는데 보증금을 주지 않아서 두 시간씩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있단다. 집주인은 돈이 없으니 방이 나가면 준다고 시간을 끌더니 소송이 제기되자 여대생이 방을 험하게 써서 장판과 문이 망가졌으니 감정하여 수리비를 공제해야 한다며 다투고 있었다.
박 판사가 처음 흥분한 것은 집주인 노인의 이 한마디였다. “어린 년이 버릇도 없는데다가 헤프기까지 하니 뭣에 쓰겠노. 사내놈이 들락날락하더만. 담배도 피워대서 방 안에 담뱃내가 찌들고… 에이, 내 집에 저런 더러운 년을 들인 게 잘못이지.”
임대보증금 청구사건 조정하러
들어갔다가 집주인 노인과
대판 싸우고 나온 박차오름 판사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 그녀가
메갈리안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선배 여판사가 말 건네자
봇물 터진 박 판사의 고해
“사람들 무서워 판사 됐는데
사건기록이 자꾸 말을 걸어요
복수가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저 상태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박 판사가 어디서 모욕적인 발언을 하냐고 화를 냈더니 노인은 젊은 여판사가 여자 편만 든다며 청와대에 진정하겠다, 신문사에 알리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 와중에 울던 여대생이 뱉은 말이 결정타였다. 혼자 사는 집주인 노인네가 밤에 술만 마시면 여대생 방문 앞을 서성거려서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단다. 한번은 새벽에 누가 방문을 여는 기척에 깨서는 잠기지 않는 방 문고리를 손으로 붙잡고 밤을 새운 일도 있고. 이후 사람을 불러서 잠금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했더니 그걸 가지고 문을 망가뜨렸다고 난리란다.
이 말을 들은 박 판사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인을 불같이 노려보며 여대생에게 왜 바보같이 그때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날부터 노인은 법원 정문에서 일인시위 중이다. 손으로 삐뚤삐뚤 쓴 격문을 옆에 세워놓고. ‘동방예의지국의 법도가 땅에 떨어졌다, 장유유서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여자가 판사랍시고 노인을 무시하는 말세다, 젊은 여자 둘이 작당하고 혼자 깨끗이 사는 상이용사를 모함한다….’
수석부장판사는 법원장실에, 한세상 부장은 수석부장실에, 박 판사는 한 부장 방에 차례로 불려갔고, 그러잖아도 수석부장판사가 박 판사의 튀는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임 판사는 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온 박 판사는 입을 꽉 다물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묻는 임 판사의 물음에 묵묵부답 사건 기록만 넘겼다. 그녀의 돌 같은 침묵에 서운해진 임 판사는 못나게도 분노조절장애 운운하는 한마디를 내뱉고 만 것이다.
눈치 없게도 이 순간에 옆방 정보왕 판사가 싱글거리며 들어와 기름을 부었다.
“정의의 용사 박 판사님이 이번에 또 한 건 했다면서?”
임 판사가 얼른 눈짓을 했지만 정 판사의 너스레는 멈추지 않았다. “근데 박 판사 요즘 법원에서 너무 유명해진 것 같아. 안티가 생기는 게 유명인이라는 증거지. 젊은 남자 판사들 사이에서 박 판사가 메갈리안(여성혐오에 공격적으로 맞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라는 소문이 돈대. 너무 남성을 적대시하는 거 아니냐며. 아마 지난번 형사판례연구회 때 박 판사가 성범죄 양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합의를 양형에 반영하면 안 된다며 길길이 뛴 것 때문…”
“시끄러! 정 판사는 일 안 해? 왜 밤낮 남의 방에 놀러 와서 쓸데없는 소리야?” 임 판사가 말허리를 자르며 입을 막자 정 판사는 툴툴거리며 돌아갔다.
박 판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성을 적대시? 밤에 방 밖에 남자가 서성댈 때 혼자 사는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자기들이 알기나 해?”
“그거야 그렇지만 판사가 세상 모든 문제를 어떻게 다 해결합니까. 임대보증금 청구사건 조정하러 들어갔으면 보증금 문제나 빨리 해결하고 나왔어야죠. 판사는 슈퍼맨이 아니에요. 혼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요. 그렇기는커녕 한번 실수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욕을 먹는 존재라고요.”
“… 네 그렇죠. 그런 줄 알았으면 판사가 되지 말걸 그랬나 봐요. 세상이 온통 이따위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줄 알았으면 그렇게 죽도록 공부할 필요도 없었는데. 차라리 세상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어요.”
뇌까리는 박 판사의 말이 임 판사를 소스라치게 했다. 임 판사가 이토록 걱정이 심한 건 이유가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박 판사는 평정심을 잃고 있었다.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한건 한건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밤을 새우며 일하기 일쑤. 무리해서인지 언제부턴가 자꾸 혼잣말을 하는 버릇도 생겼다. 기록을 보면서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말을 되뇌다가 키보드를 부숴버릴 듯 세게 자판을 내리쳐서 일하던 임 판사가 놀라 쳐다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쳐다보는 임 판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저 상태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모범생으로 살아야 하는 소수자의 압박
임 판사가 저녁 때 젠더법연구회 영화 소모임에 같이 가자고 박 판사를 조른 것은 박 판사가 여판사들과라도 친해져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여성 법관들 모임에 혼자 가기 어색하니 같이 가달라고 졸랐지만 말이다.
사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왔는데 알고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건청인(청각이 정상인 사람)으로 태어나 자란 이길보라 감독이 자기 가족 이야기를 찍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 소모임 장소는 법원 회의실, 벽에는 역대 법원장 사진이 수십장 걸려 있다. 한명도 예외 없이 근엄한 표정의 남성들이다. 영화 상영을 위해 흰 스크린을 벽 앞에 설치했다. 그 근엄한 얼굴들을 덮어버린 스크린 위로 두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활짝 웃는 감독의 어머니 얼굴이 가득 비춰졌다. 청각장애인들은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박수 대신 손을 저렇게 흔드나 보다. 임 판사는 장중한 분위기의 법원 회의실 공기를 한순간에 바꾸어놓은 어머니의 웃음과 손짓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과연 그 박수 소리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각자 느낀 점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판사가 손말과 입말의 차이를 보충 설명해 주었고, 이어 재판에서 수화 통역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지, 장애인 재판 때 절차적으로 보완할 점은 없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길보라 감독은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로 삶에 대한 공부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자기나 자기 동생이 장애인의 자식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착한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한 여판사는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으며,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이 있고, 그건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임 판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감이었다. 여성 법관들은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임 판사는 이방인이 된 듯 조금의 어색함을 느꼈다.
박 판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모임이 끝나고 다시 일하러 판사실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박차오름 판사님이죠? 반가워요. 시간 있으면 잠시 자판기 커피라도 할래요?” 민사합의부의 오정인 부장판사다. 의외였다. 사시 수석, 연수원 수석, 최초의 여성 지원장, 최초의 여성 행정처 심의관… ‘1’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온갖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오 부장은 늘 홀로 있는 점에서도 그 숫자와 비슷했다. 40대 중반인 그녀는 독신이었고, 회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늘한 미모 때문에 더욱 눈의 여왕처럼 차가워 보였다. 그런 그녀가 먼저 말을 걸다니. 임 판사까지 엉겁결에 박 판사와 함께 오 부장 뒤를 따라 20층 휴게실로 올라가 자판기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던 오 부장은 창밖 서울의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말을 던졌다. “…얘기 들었어요. 많이 힘들죠?”
박 판사는 움찔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오 부장은 아랑곳 않고 창밖 멀리, 예전에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터에 지어진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독백하듯 말을 이었다.
“아까 모범생으로 살아야 하는 소수자의 압박감 얘기를 들으며 머리가 어질어질했어요. 난 우연히 공부 하나 잘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 직업을 갖게 되었죠. 온통 남자뿐인 환경에서 약점 하나 보이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 속의 괴물을 들여다볼수록 내 안의 괴물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은 내 겉만 보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해요. 난 모범생의 탈을 쓰고 자랐지만 속으로는 날 억누르고 괴롭히는 주변 인간들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처지가 바뀌었으면 나 또한 내가 재판하는 범죄자들과 같은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오 부장의 말을 듣던 박 판사는 서서히 무너져내리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번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는 듯 흐느끼는 박 판사를 오 부장은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렸다. 이윽고 박 판사의 입이 열렸다.
“부장님, 전 판사 자격이 없어요. 전 사람들이 무서워서, 단지 저를 지키기 위해서 판사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아버지는 집안의 제왕이었고,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애가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으니 음대 가서 좋은 집안에 시집이나 가라는 엄명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문 앞에 모든 가족이 정렬해서 군대 점호하듯 인사를 드려야 했고, 집 안에 티끌이라도 있으면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다. 어머니의 얼굴엔 멍 자국이 끊이지 않았지만 가장 앞에서는 모두 방긋방긋 웃어야 했다. 사춘기가 되어 가슴이 부풀기 시작하자 피아노 선생의 끈적한 눈길과 손길에 시달려야 했고, 1년이 넘도록 참다가 겨우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선생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계집애 행동거지에 빈틈이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 거라고 매를 맞아야 했다.
못 견디겠어요, 그 목소리들 때문에
음대에 간 후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동업자의 배신으로 부도를 냈고 살던 집도 경매로 날아갔다. 왕국이 무너지자 신민들은 왕에게 침을 뱉었다. 온갖 아부를 하던 임원들도, 온갖 핑계로 손을 벌리던 일가친척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꼴 좋다고 웃으며 돌을 던져댔다. 부도난 수표 때문에 감옥에 다녀온 아버지는 뒤주에 갇힌 사람처럼 단칸방 구석에서 종일 소주만 마시다 쓰러졌다.
“전 단지 제 한 몸 건사하려고, 살아남으려고,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고시공부를 했어요. 힘이 필요했거든요. 고시에 붙으면 그런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박 판사는 고해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판사가 되어 사건 기록을 보는데, 자꾸만 말을 걸어와요. 기록 속의 사람들이요. 보증금을 떼인 임차인이, 상습적으로 상사에게 성희롱당하는 말단 여직원이, 수술받다 시신으로 돌아온 자식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한마디 듣지 못한 어머니가, 빚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목을 맨 가장이.” 뭔가에 홀린 듯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져갔다. “그래서 못 견디겠어요. 그 목소리들 때문에. 전 제 몸 하나 지키려고 판사가 되었는데 어느새 복수를 하고 싶어진 것 같아요. 그 목소리들이 제 목소리같이 느껴져요. 전 제가 당한 일들에 대해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제가 어떻게 판사를 할 수 있겠어요….” 박 판사의 흐느낌은 길었다.
오 부장은 천천히 다가와 박 판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나요? 박 판사님은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그저, 조금만 마음을 쉬게 해 주세요. 자신의 상처에 튼튼한 새살이 돋아날 시간만 허락하세요.”
박 판사는 오 부장의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울었고, 임 판사는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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