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mnme@naver.com
|
[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3) 어떤 양육권 소송
마치 아빠 곰과 아기 곰들 같았다. 원고는 두 딸아이들을 불끈 힘준 두 팔에 매달고 풍차처럼 빙빙 돌고, 온 방 안을 뛰어다니며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일곱살, 아홉살의 두 딸아이는 까르르까르르 웃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일단 아이들이 아빠를 무서워한다는 피고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봐야겠네요.” “네, 판사님. 아빠와 아이들의 유대관계에 문제가 없어 보여요.”
주심판사인 임바른 판사는 관찰실 유리창으로 면접교섭실 내부를 들여다보며 가사조사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들 엄마인 피고는 잠시 화장실에 가고 없다. 이 유리창은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만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다. 교섭실 내부는 놀이방 같다. 온갖 장난감이 쌓여 있고, 바닥도 벽도 밝은 색깔이다.
원고가 피고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한 사건이다. 원고는 부정행위의 증거로 피고가 어떤 남자와 주고받은 다정한 문자메시지 내용, 그리고 피고의 뒤를 밟아 밀회 현장을 덮쳐서 찍은 사진을 제출했다. 미처 옷을 입지 못한 피고와 남자의 당황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현재 원고와 피고는 별거 상태고 피고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였지만, 아이들의 친권자 및 양육자는 엄마인 피고로 지정했다. 원고는 자기가 아이들을 키우겠다며 항소한 것이다.
애들에게 엄마 죄상을 알려주겠다고?
항소심 재판장인 한세상 부장판사는 이 가정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재판에 앞서 양육환경 조사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가사조사관이 피고의 집을 방문하여 피고와 아이들을 면담했다. 14평 원룸 아파트는 빨래와 장난감, 애들 책으로 너저분했고 비좁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피고는 자기가 일하는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종일 데리고 있었고, 첫째도 학교가 끝나면 어린이집에 와 있도록 하고 있었다. 중장비 기사인 원고는 건설 현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상황이라 아이들을 돌볼 형편이 되지 못했다. 피고는 자기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아빠를 무서워하고 엄마와 살고 싶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사조사관은 아빠와 아이들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법원 내에 있는 면접교섭실로 아이들을 데려오게 하여 원고와 만나게 한 것이다.
뛰어다니다 지친 아이들은 이제 아빠한테 기대어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재잘거리며 책장을 넘기던 첫째는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우와, 우리 엄마 같다.” 둘째도 맞장구쳤다. “진짜! 엄마랑 똑같아!” 펼쳐진 페이지에는 한가득 천사가 그려져 있었다. 순백의 옷에 활짝 펼친 날개, 긴 머리칼과 아름다운 얼굴.
계속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던 원고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미소 짓고 있는 천사의 얼굴을 한참 노려보던 원고는 무뚝뚝한 말투로 내뱉었다. “너희 엄마는 천사가 아니야. 약속을 저버리는 나쁜 사람이야.”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화면을 휙휙 넘기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놀란 임 판사가 면접교섭실 문을 열고 뛰어들어가서 아이들 쪽으로 핸드폰을 내밀고 있는 원고의 손목을 붙잡고 핸드폰을 잡아챘다. 핸드폰 화면에는 밀회 현장에서 찍힌 피고와 남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부인 바람피웠다며 이혼청구 이어
양육권까지 달라고 항소한 남편
시골로 내려가 과수원을 하며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는 양육환경 조사를 명령
마당 넓은 집에서 애들 키우고
싶다는 목표 위해 일감 찾아
전국 돌며 집에 소홀했던 남편
그래도 부인이 부정행위 했으니
애는 당연히 남편에게 가야 할까
갑자기 임 판사가 뛰어들어와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가사조사관이 아이들을 달래는 사이 피고가 달려와 아이들을 껴안았다. 원고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애들에게 애엄마가 어떤 여자인지 알려줘야죠! 왜 아무 잘못 없는 제가 애들을 뺏겨야 합니까! 저 여자는 제가 멋대로 집을 나간 것처럼 말을 꾸며내서 애들이 저와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어요. 진실을 밝혀 주세요!”
자리를 정리하고 판사실로 돌아온 임 판사의 이야기를 듣자 처음에는 원고에게 동정적이었던 박차오름 판사가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어떻게 아빠가 어린 딸애들에게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이려 들 수 있죠? 미친 사람 아니에요?” 아무래도 원고는 치명적인 자충수를 둔 모양이다. 한 부장도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판 날, 한 부장은 원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원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원고는 말주변이 없고 낯을 가리는 듯했다. 재판장의 질문에 바로바로 답하지 못하고 송아지처럼 눈만 꿈뻑거릴 때가 많았다.
머릿속으로 참을 인자를 숱하게 그리며 재판을 진행하던 한 부장은 원고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 잔뜩 써낸 준비서면을 고무 골무를 낀 엄지로 넘기며 질문했다. “시골로 내려가 과수원을 하며 애들을 키우겠다고요?”
갑자기 원고의 눈에 반짝반짝 생기가 감돌았다. “네, 판사님.”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요?” “포클레인도 처분했고요, 10년 넘게 저축한 돈도 있거든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이 꿈이어서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총각 때부터 이 악물고 적금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농협에서 영농자금 대출을 받으려고요.”
“과수원 일이 바쁠 텐데 어린애들을 돌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모와 이모부님이 살고 계신 마을로 내려가려고요. 이모님 댁 바로 옆집을 사기로 했어요. 시골이라 엄청 싸요. 이모님이 엄청시럽게 좋아하셔요. 아예 같이 살자고 성화신데 제가 우겨서 옆집에 살기로 했어요. 인심 좋은 마을 분들도 다들 어서 이사 오라고 난리예요.”
원고는 꿈꾸는 듯한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시골이지만 마당 넓은 집에 강아지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며 살 수 있어요. 온 들판이 다 놀이터고요. 작긴 해도 번듯한 초등학교도 있고, 선생님도 참 좋은 분이시더라고요. 종일 엄마 일하는 어린이집 구석에서 그림책만 보다가 저녁에는 코딱지만한 아파트에서 티브이나 보며 사는 딸애들 생각하면 못 견디겠어요. 시골 학교지만 널찍한 운동장에서 동네 친구, 언니 오빠들과 뛰어놀고, 들판에 나가서 신나게 잠자리 잡고 메뚜기 잡으며 살면 얼마나 좋아요!”
한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한마디 했다. “그래도 농사짓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애들까지 건사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빠가.”
원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박하게 말했다. “판사님, 애들이 없으면 전 죽습니다. 죽어요. 참말로요. 살 이유가 없어요.” 한 부장은 재판을 마치고 2주 후로 선고기일을 정했다.
고아원 앞에 버려졌던 그
다음주, 편지지 수십장을 빼곡히 메운 원고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아이를 키워준다던 원고의 이모는, 사실 이모가 아니었다. 원고는 부모도 일가친척 누구도 없었다. 그는 고아원 앞에 버려진 아이였다.
정부 지원금과 종교단체들의 후원 물품 챙기는 것에만 눈이 벌겋던 고아원 원장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툭하면 매질을 했다. 열여섯살 때 고아원을 뛰쳐나온 원고는 읍내 시장통에서 구걸도 하고, 잡일도 하며 거리 생활을 하다가 원고를 딱히 여긴 부부를 만났다. 원고가 말한 ‘이모와 이모부’였다. 이들과 3년간 함께 살면서 농사일을 도왔다. 이모와 이모부는 어느 봄날 원고 이름으로 들어놓았던 적금통장을 내밀며 서울로 가서 기술을 배울 것을 권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서 몇 년 만에 중장비 기사가 되었지만 대도시의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겨울의 칼바람 같았다. 그의 소망은 언제나 한가지뿐이었다. 그를 닮은 아이와 함께 사는 것. 더 이상 피붙이 하나 없는 외톨이로 살지 않는 것.
동네 세탁소집 딸인 긴 머리 처녀를 죽자 사자 따라다닌 것도 어쩌면 그가 어린 시절 상상했던 이상적인 엄마의 얼굴을 그녀에게서 찾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힘겹게 결혼에 성공하고 두 아이를 갖게 되자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제 마당 넓은 집에서 애들을 키우고 싶다는 다음 목표를 갖게 된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불어나는 통장 잔고는 고단함을 잊게 했지만, 아내와의 거리 또한 잊게 하고 말았다. 집에 들를 때마다 아내는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원고는 조금만 참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말다툼이 늘었고, 대화는 줄었다. 그의 꿈을 이루기 충분한 액수가 모인 후에야 아내와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편지는 한 부장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한 부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 판사는 메모지를 뒤적이며 양육자 지정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기준을 줄줄 읊어대고 있다. “미성년인 자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 또는 모와 미성년인 자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인 자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성년인 자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현재의 양육상태에 변경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하여는, 현재의 양육부모로 하여금 계속하여 양육하게 하는 것이 사건본인(아이)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며, 다른 부모를 친권행사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사건본인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부장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애들이 어리다고 해서 꼭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기준은 없지?” “네, 부장님. 과거에는 몰라도 요즘은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엄마든 아빠든 자녀를 잘 키울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 사건에서 현재의 양육상태에 변경을 가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월급으로 아이 키우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경제적 요인은 원고의 양육비 지급으로 조절 가능하니까요.”
“그놈의 판례 타령은 집어치우고, 임 판사, 뭔가 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왜 아무 잘못 없는 남편이 아이를 뺏기는 꼴이 되어야 하지? 바람피운 건 피고인데.”
“판례상 유책 배우자라고 하여 양육자 지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녀 복리를 기준으로….” 줄줄 읊어대던 임 판사는 옆에서 박 판사가 쿡 찌르자 비로소 부장의 표정을 살피고 입을 닫았다.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
기나긴 합의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한 한 부장은 중학생인 두 딸이 자고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요즘 키가 훌쩍 커져서 아가씨 태가 나기 시작한 녀석들이지만 자는 꼴은 예닐곱살 때 종일 토닥거리다가도 잘 때면 둘이 꼭 부둥켜안고 자던 모습 그대로다. 이제 둘이 자기에는 비좁아 보이는 낡은 침대인데.
한 부장은 침대 맡에 앉아서 딸애들의 머리칼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빨리 커버리는 걸까. 화장대 위에는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유치원 때의 녀석들 사진이 놓여 있다. 이제는 저 새끼 오리 같던 시절의 녀석들은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자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녀석들 없이 난 살 수 있을까. 한 부장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판결 선고 날, 피고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원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한 부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읽으려던 판결문을 내려놓고 원고를 쳐다보았다.
“원고의 둘째 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요?” 원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벌레래요. 나방이 제일 무섭지만, 다른 벌레도 모두. 그럼 첫째 딸의 요즘 소원이 뭔지 알아요?” “….”
“에이핑크 공연 보러 가는 거래요. 같은 반 단짝 친구 넷이랑 같이. 솔직한 심정은 아이돌같이 생겨서 전교 인기 짱인 옆반 반장도 같이. 아동심리 전공인 가사조사관이 애들과 금세 친해졌더군요. 두툼한 보고서 읽느라 재판부가 고생 좀 했어요.”
한 부장은 원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새로운 세계예요. 원고가 평생 꿈꾼 마당 넓은 시골집은 아름답지만, 아이들의 꿈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이미 자기 세계 속에서 자기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먼저 커버리지요.”
원고의 송아지 같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부장은 촉촉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나지막이 말했다. “원고, 미안합니다. 원고는 자신의 고통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줄 마음의 여유까지 잃은 것 같습니다. 지금 법이 원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이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 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고개 숙인 피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