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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4) 재산이 가족에 미치는 영향
‘목사, 교수? 할렐루야. 이걸 어떻게 조정하라고….’
임바른 판사는 한세상 부장이 준 두꺼운 사건 기록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다. 민사사건 중 가장 골치 아픈 사건 중 하나가 가족간 재산 분쟁 사건이다. 증거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평생 쌓인 온갖 서운한 감정이 원한이 되어 있을 경우가 많다. 이에 못지않게 힘든 사건이 사건 당사자가 목사나 교수인 사건이다. 평생 자기 영역에서는 신처럼 군림하던 사람들이라 자기 확신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판사 말이고 뭐고 남의 말은 도통 듣질 않는다. 경험은 못해봤지만 판사 또는 전직 판사가 사건 당사자인 경우도 비슷할 것 같다. 노인분들이 당사자인 경우도 쉽지 않다. 자기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고 벌컥 화를 내기 일쑤다. 그런데 이 사건은 형제간 재산 분쟁인데, 소송을 주도하는 이가 60대의 목사와 교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임 판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목사는 차남, 교수는 삼남이다. 이 둘을 중심으로 장녀와 차녀도 뭉쳐서 장남과 소송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막내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참전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사건의 핵심은 90살 노인인 아버지가 장남에게 공시지가만도 50억대인 땅을 증여한 것에 대한 다툼이다. 차남 이하 연합군은 장남이 치매 상태인 아버지를 꼭두각시로 이용하여 증여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이어서 무효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아버지가 사실상 치매 상태가 된 지 벌써 1년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후 자수성가하여 자동차 부품 공장을 수십년간 운영하여 번 돈을 수도권 일대 땅에 투자하여 수백억대 재산을 일군 아버지는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급격히 쇠약해졌다. 독신인 막내아들, 그리고 가정부와 함께 살고 있던 아버지를 넉달 전 갑자기 장남이 모시겠다며 모시고 가더니 노른자위 땅이 장남 앞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집안 재산 말아먹은 장구한 역사
임 판사는 마음을 다잡고 조정실에 들어갔다. 형제들은 입을 꾹 다물고 서로 외면하고 있었다. 한 부장이 코치한 대로 조정 시작 전에 임 판사는 화해 모드를 조성해보려고 최대한 몸을 낮추어 겸손한 말투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길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조정이 법을 떠나 가족의 유대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의 존경을 받는 목사님, 교수님들이시니만큼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임 판사는 자기 이야기가 조금 먹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스스로 흡족해했다. 조정 잘하는 어떤 재판장은 조정하기 전에 미리 ‘회심곡’을 한참 틀어놓아 분위기를 잡기도 한다던데 그럴걸 그랬나? 목사님에겐 역효과려나?
임 판사의 부질없는 생각은 곧바로 막을 내렸다. “판사님의 간곡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으로 시작한 목사님의 웅변이 시작된 것이다. “점잖은 집안에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런 송사를 시작했겠습니까? 형님이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이 집안 재산을 맘대로 해온 역사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 역사란 참으로 장구했다. 장남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십년 넘게 경영 수업을 받으며 일하다가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뛰쳐나가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또 말아먹어왔다. 그의 사업 리스트는 각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교재와도 같았다. 벤처 열풍 시대에는 컴맹임에도 코스닥 상장의 부푼 꿈을 안고 ‘네트웍스’, ‘시스템스’로 끝나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아이티(IT) 회사를 연이어 차렸고,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연예기획사, <쉬리>이후 대박 영화가 나오기 시작하자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입도선매식으로 영화에 묻지마 투자하는 투자사, 아시안게임 유치 후 인천 지역 부동산이 들썩들썩하자 전세 끼고 다세대주택 매입하기…. 그의 사업 리스트는 투기적 사업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는 점을 보여주는 교재이기도 했다. 그가 사업 하나에 실패할 때마다 그의 아버지가 악착같은 부동산 투기로 불려 놓은 강남의 상가, 술집 아가씨들에게 빌려준 오피스텔들, 남의 명의로 구입한 농지들이 사라졌다. 그는 나름 경제의 순환에 이바지해온 셈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목사님의 웅변을 듣노라니 이번에는 미국 박사인 삼남 교수님이 신경질적인 말투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요지는 차남 목사님도 집안 재산 빼먹기에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건한 풍모와 달리 목사님은 소싯적 좀 노신 모양이다. 20대 초반부터 박애정신을 발휘하여 구호사업에 전념하셨다. 단지 대상이 한정적일 뿐이다. 요정 또는 룸살롱 아가씨들의 설움을 달래기 위한 명품 선물과 가게 빚 갚아주기, 그녀들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한 방 얻어주기. 그러다가 그녀들의 기둥서방도 구호하기 시작했다.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합의금을 물어주는 방식으로. 어디든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아버지의 불호령에 늦깎이로 들어간 학교는 정체불명의 신학교. 신학교 설립자의 사업 수완만큼은 제대로 배웠는지 교회 형편이 어렵다며 눈물짓고 있는 목사님 손목에 번쩍이는 시계의 금장은 명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임 판사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씩씩거리고 있는 장남은 아우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추임새처럼 고함을 쳤지만 아우들보다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외마디 고함에 그칠 뿐 길게 반론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딸들의 반란 차례였다. 장녀와 차녀는 앞다투어 오빠와 남동생들이 아들이랍시고 집안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는 동안 딸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힘들게 살았는지 한 맺힌 목소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삼남이 그나마 집안 아들 중 공부 좀 한다고 명문고 현역 선생들을 데려다 초고액 과외를 시켰는데도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대학 입학처와 은밀한 교섭에 들어갔다. 학교에 버스를 몇 대 사 주거나 도서관 증축 기금으로 거액을 내야 한다는 말에 기가 질린 아버지는 그 돈이면 차라리 미국 박사를 사오겠다며 유학을 보냈다. 10년 만에 박사를 따온 아들이 교수 명함이라도 갖게 하기 위해 결국 대학이 요구하던 버스 값 비슷한 돈이 들었다. 대학 재단은 일관성 있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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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교수일 경우 더 심한데
완벽하게 그러한 사건 걸렸다
90살 치매 아버지 땅 증여받은
장남과 타 형제간 소송전쟁이다 형제자매란 생존경쟁 라이벌
그 법칙 밝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떠올린 임 판사
가족제도는 진화적 특성 못 이길까
한데 이 집 막내는 왜 이러지? 통화녹음은 이 집안의 가풍인가 딸들은 아버지가 모자라는 아들들에게는 후했으면서 똑똑한 사위들을 냉대해서 살림 꾸려가기도 힘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의 주거지는 신문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이었다. 갈수록 장남 대 차남 연합군의 대결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어가는 이유는, 문제되는 땅을 되돌려놓는 것은 시작일 뿐이고 결국 아버지 재산을 각자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최종 관심사이기 때문이리라. 길고 긴 이야기들을 들으며 혼미해진 임 판사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중 몇 대목들이다. 산 사람은 많아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문 이 책을 임 판사는 재미있게 끝까지 읽었다. 기본적으로 동물행동학자인 도킨스가 든 예 중에는 새끼 새가 큰 소리로 울어대도록 하는 유전자가 우세하게 퍼져가는 과정이 있다. 둥지의 새끼 새들이 입을 벌리고 울어대면 어미 새는 벌레를 먹여준다. 새끼들이 실제로 배고픈 정도에 비례하여 소리를 지른다면 먹이는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소리를 질러 더 많은 먹이를 얻는 새끼가 생존 및 번식에 유리하므로 결국 그 새끼의 유전자가 대를 이어 번성하게 되고, 둥지 안은 필사적으로 더 큰 소리를 질러대는 새끼들로 가득 차게 된다. 새들의 지저귐은 갑자기 조정실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부장에 의해 중단되었다. 임 판사가 역부족일 것을 잘 알고 있는 한 부장은 지금쯤 당사자들의 고함과 하소연이 끝나가겠다 싶은 시점에 나타나 다음 기일까지 각자 집안 재산 분배에 관한 조정안을 만들어 오라고 일갈하고는 기일을 마쳤다. 다음 기일까지 2주 사이에 형제자매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제출했다. 투서에 가까운 준비서면과 녹취록들이었다. 지난번 기일에 자기 약점을 공격당했다고 느꼈는지 서로 상대방이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공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차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남이 불편한 아버지를 방치하다시피 했으며 자기가 모시겠다며 모셔 간 후에도 실제로 똥오줌을 받아가며 아버지 병수발을 한 것은 막내라고 주장했다. 장남은 아우들이 자기를 욕하지만 막내가 아버지와 살면서 모셨을 뿐 다른 아우들은 아버지를 돌본 적 없고 평생 무섭던 아버지가 쇠약해져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자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딸들은 자기들이나 친정에 들러서 아버지 수발을 가끔이라도 했지 아들과 며느리들은 아버지 정신이 흐릿해진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을 끊었다고 주장했고, 아들들은 딸들이 친정에 가끔 드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마다 집에 있던 값진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 집안은 서로 통화할 때마다 통화를 녹음하는 가풍이 있나 보다. 두툼한 녹취록이 여럿 제출되었다. 조정실에서와 달리 쌍욕이 난무하는 통화 내용에는 ‘형은 아버지 얼른 안 돌아가신다며 영감태기 명줄도 길다, 평생 기다리다 내가 먼저 늙어 죽겠다는 소리를 밥 먹듯이 했잖아!’, ‘그러는 너는 아버지가 탈세랑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비싼 변호사 사서 뺄 궁리는 안 하고 대표이사부터 바꾸자고 안 했어?’ 등의 주옥같은 내용이 가득하다. 서류들을 읽으며 임 판사는 다시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렸다. 도킨스는 끝없는 자기 복제를 추구하는 유전자가 주인이고 생물은 유전자를 위한 숙주이자 생존 기계로 본다. 자식은 부모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런데 유전자 입장에서는 노쇠한 부모보다 기대 수명이 더 길어서 번식할 기회가 더 많은 자식 쪽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도록 하는 특성을 가진 유전자가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도록 하는 쪽보다 더 번성하게 되어 자연 선택의 과정을 통해 일반화된다. 딸들이 지난 기일에 며느리들을 공격했기 때문인지 며느리들이 억울하다며 써낸 서면들도 있었다. 자기는 자식들 건사하면서도 시부모에게 할 만큼 했다는 이야기들로 시작하는데 묘하게도 뒤에는 시댁이 친정 식구들을 무시하고 박대해서 한이 맺혔다는 하소연으로 흐르는 공통점이 있었다. 역시 유전자를 공유하는 쪽과 공유하지 않는 쪽을 똑같이 ‘부모’라고 부르는 인간의 가족제도는 생물체의 진화적 특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조정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법원 가족 체육대회.’ 왜 이런 걸 개인 시간인 주말에 개최하는 걸까 생각하며 임 판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이라. 좋지. 분위기 참 가족적이겠다. 막냇동생이 양자라고요? 조정실에는 뜻밖에도 90살 아버지도 출석해 있었다. 장남이 모시고 나온 것이다. 뭔가 유리한 말을 하시도록 준비가 되어 있나 보다. 차남 연합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기일에 나오지 않았던 중년의 막내아들도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장남의 기대를 배신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버지는 인사를 올리는 차남에게 어눌하게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시오?’ 하고 물었다. 딸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노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저 여자들이 누군데 우냐고 중얼거렸다. 당황한 장남은 어제까지만 해도 정신이 또렷하셨다며 변명을 했다. 임 판사는 당사자들이 들고나온 조정안을 훑어보았다.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안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 막내아들이 재산 분배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왜 막냇동생분에 대한 조항은 없는 거죠?” “아, 판사님은 모르시겠구나. 쟤는 양자예요. 양자.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직원 아들인데, 오갈 데가 없어서 아버지가 데려다 키운 거예요.” “불쌍하면 그냥 데리고 계시다가 크면 내보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아버지 연세 오십에 쟤를 친생자로 출생신고까지 하셨죠. 그때부터 노망이 시작된 건지.” 막내가 투명인간인 양 모두들 거침이 없었다. “만약 쟤가 재산 욕심에 딴소리를 하면 정식으로 아버지 이름으로 소송 걸어서 재판상 파양 절차를 밟으려고 변호사도 알아봐놨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소송 건다는 교수의 말에 구석에 묵묵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막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소송이라뇨. 어떻게 제가 아부지랑 소송을 해요. 원하시는 대로 호적 정리해주세요.” 중년의 사내는 노인 앞에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손을 어루만졌다. “지는 물러갈게요. 아부지 부디 건강하세요.” 그 순간 갑자기 노인은 일어나려는 사내를 막무가내로 붙잡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날 두고 어딜 가. 같이 집에 가자. 집에. 나 무서워.” 사내는 노인을 끌어안고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그 모습을 멀뚱멀뚱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임 판사는 제출된 조정안을 한쪽으로 치워버리며 생각했다. 도킨스는 이 장면을 뭐라고 설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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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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