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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5 20:18 수정 : 2015.12.27 11:34

gomnme@naver.com

[토요판]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5) 신화가 불멸이 되는 과정

-서초동 대지 다방

“네? 3천이요? 그렇게 비싼가요? 요즘은 변호사가 많아져서 몇백이면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허허, 사업하는 양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고 그러셔. 여자들 빽도 싸구려 시장 가방하고 루이비똥하고 값이 같아요? 이 사건은 워낙 복잡하고 계약서 문구가 애매해서 판사 재량이 많이 들어가는 사건이라니까. 판사랑 원만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일급 전관을 사지 않으면 판사가 힘들어서 기록을 다 읽지도 않아요. 어차피 재량이니 결국 빽 싸움이지.”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투명해져서 전관 약발도 듣지 않는다고 하던데… 특히 민사는.”

“누가 그래요? 단군의 후손 핏줄이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아요? 사장님 공장 지으면서 인허가받을 때 맨입으로 했어요? 이번 건 A화장품 납품계약 따낼 때 맨입으로 따냈어요? 사장님네 회사 화장품 용기가 신기술 첨단제품이라는 신문 기사, 공짜로 나간 거예요? 신문 보면 국회의원들 의사당에 앉아서 인사 청탁 문자 보내고 있죠? 이 나라에 유일하게 평등한 게 있다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이치라고요.”

“그래도 법원 돌아가는 건 좀 다르다고 하던데….”

“백보 양보해서 판사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에프엠이라고 합시다. 그래도 한 명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친한 사람에게 모질게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어요? 자기도 때가 되면 개업할 입장이라 두루두루 인심 잃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고. 그런 판사에게 걸렸는데, 상대방은 판사랑 잘 통하는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생각해 봐요. 이겨도 좋고 아님 말구 하는 사건이라면 상관없지만 사장님처럼 회사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경우나 사람이 구속되냐 마냐 하는 경우에 한가하게 열 중 아홉은 에프엠이니 괜찮겠지, 할 수 있겠어요?”

“…… 알았어요. 그런데 3천 중에 2천은 성공보수라는 소리 아녜요? 그거 무효라고 뉴스에 나오던데.”

“성공보수라니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워낙 잘나가는 전관이니까 3천은 기본으로 받는데, 다만 세상에 백 프로라는 건 없으니 만에 하나 결과가 안 좋으면 도의적으루다가 2천은 돌려드리겠다 이거지. 이번 납품대금 못 받으면 회사 부도난다면서요. 지금 3천이 문제예요?”

“진짜 김○○ 변호사가 재판부랑 잘 통한단 말이죠?”

“괴팍하기로 소문난 한세상 부장판사랑 유일하게 막역한 사이예요. 연수원 동기에 좌우 배석을 2년 같이 하고, 단독 판사 때도 같은 방에서 3년이나 보냈다고요. 형제나 다를 바 없다니깐!”

“그 변호사한테 뭘 믿고 맡긴다냐”

-법원 구내식당

“여하튼 김○○ 그 인간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니깐!”

“부장님, 그 사무실 서면이 부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임 판사는 몰라서 그래. 무슨 재주를 부리는지 사건은 잔뜩 맡아서는 법정에서 물어보면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지난번 증인 신문하는 꼴 봤지? ‘증인은 원고는 그 자리에 없었지요?’ 사무장이 덮어쓰기로 만든 신문사항을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들고 와서 줄줄 읽으니… 그런 사무실에 사건 맡기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돼. 변호사의 하루도 똑같이 24시간인데 사건이 많으면 건당 투입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모를까?”

“김 변호사님과 인연이 많으셨다면서요?”

“악연도 인연이라면 그렇지. 연수원 때부터 나 나이 많다고 왕따시키더니 좌우 배석할 때는 부장에게 아부하면서 나 바보 만들고. 단독 할 때는 같은 방 쓰면서 서로 말도 안 했다니까.”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는 마셔요.”

“당연히 재판을 사감으로 하지는 않지. 당사자가 무슨 죄겠어. 그나저나 그 화장품 용기 납품대금 사건 임 판사 의견은 어때? 검토해봤어?”

“네. 부장님 말씀대로 기록은 두껍지만 대부분 직접 관련 없는 자료들이라 보는 데 얼마 안 걸리던데요? 계약서 문구가 워낙 명확하게 되어 있고 원고가 납품한 용기가 불량인 것도 충분히 입증되어 있어서 달리 볼 여지가 없더군요. 피고 회사 구매 담당자에게 뒷돈 주고 무리하게 수주했다가 피고 내부 감사에 걸려 구매 담당자가 해고된 일도 나오고….”

-김○○ 변호사 사무실

‘한세상 그 인간은 하여튼 인간이 모질고 비뚤어졌어. 그 정도 사소한 실수 가지고 법정에서 면박이나 주고. 도대체 함께 근무한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없다니까. 모셨던 법원장 출신 변호사가 들어와도 소 닭 보듯 하고. 그러니 출세를 못하지. 누가 좋은 소리를 해주겠어? 결론이야 법대로 하더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 그게 아니지.’

‘그나저나 브로커에게 소개료 30프로씩 떼어주면서 사무실 운영하려니 억울해 죽겠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 게다가 세율은 좀 높아? 뻑하면 세무조사 나오고. 이건 만만한 게 자영업자야. 국가랑 동업하는 꼴이니 이럴 줄 알았으면 개업 안 했지. 에휴, 1억씩 오르는 전세금에다 애 둘 사교육비만 아니었으면….’

‘그런데, 정말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전임지 사건 수임 제한 해제 광고까지 신문에 내면서… 하루면 끝날 영장실질심사 사건 돈 천만원씩 받으면서.’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어. 자본주의에서 수요가 높으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시장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데 나만 일부러 싸게 받을 이유도 없잖아. 어차피 시장 가격이 높은 시기도 아주 잠깐일 뿐이니 최소한은 벌어야 직원들 월급 주고 세금 내고 가족 건사하지. 평균 수명은 대책 없이 길어진다는데 노후에는 어떻게 사나.’

판사와 연수원 동기 출신 변호사,
반대편에선 법원장 출신 변호사
서로 ‘전관’ 믿고 달려들었는데
전관의 효험은 과연 있었을까
누군가 허탈하고, 누군가 뻔뻔하고

녹용이 뭐 효험 입증돼서 비싼가?
밑져야 본전이니 아무리 비싸도
유명학원에 가려는 심리 아닐까?
뭐? 뻔히 이길 사건은 넘어가고
정말 어려운 사건만 전관 부른다고?

브로커가 엄청 생색낼 이야기

-서초동 대지 다방

“우리 변호사님 재판장과 친한 거 진짜 맞아요? 재판장 완전 까칠하던데.”

“아, 그럼 상대방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친한 척하면 되겠어요? 원래 판사들은 결론에서 봐주기로 마음먹으면 재판 중에는 더 까칠하게 하고 그러는 거예요. 책잡히지 않게. 모르는 소리 말고 진행 비용이나 좀 준비해 주세요.”

“네? 무슨 비용 말씀인지.”

“그걸 일일이 얘기해야 아세요? 상식이지. 우리 변호사님이 재판부 식사라도 한번 모셔야 하지 않겠어요? 대한민국에서는 일단 밥을 같이 먹어야 속내 이야기도 나오고 하는 거지.”

“네, 그럼 얼마나?”

“뭐, 너무 많이는 말고, 한 삼백?”

“네? 밥 먹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아따 진짜. 사장님 진짜 사업가 맞소? 사람이 밥만 먹나!”

“…….”

“그 비용은 현찰로 나한테 직접 주셔야 돼요. 변호사님은 판사 출신으로 백조처럼 고고한 분이라 이런 말씀을 직접 하시지는 못하는 입장이고, 나 같은 외근 사무장이 궂은일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거지. 알았죠?”

-법원 구내식당

“이야, 부장님 없이 젊은 판사들끼리 모여 점심 먹으니 구내식당 밥맛이 평소와 다른데?”

“부장님들 모임이 더 자주 있어야겠어.”

“자자, 7년근 배석판사로 묵어가다가 단독판사로 벼락출세하신 선배 말씀이나 들어보자구. 형사단독판사 하더니 어깨에 힘 좀 들어가신 거 아니유?”

“하여튼 정 판사 너는 매사에 오바라니까. 어깨에 힘이 아니라 담이 들었다. 두꺼운 깡치(복잡하고 어려운 사건) 기록 들다가.”

“아, 그때 고민하던 사기 사건? 어떻게 됐어요?”

“좀 애매하지만 피해액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이 변제되었고 전과도 없고 해서 양형기준상 집행유예 해야겠더라구. 아, 그런데 재판 막바지에 갑자기 내 고등학교 선배 변호사가 떡하니 선임계를 내는 거야. 달랑 한번 마지막 공판에 출석해서 선처 바란다는 말 한마디 우물우물거리고 가던데? 원래 변호사가 변론 열심히 잘하더구만.”

“이번주 선고할 우리 부 화장품 용기 납품대금 사건도 부장님 동기 변호사가 선임되었더라고요. 밖에서는 동기나 함께 근무한 사이면 뭔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확신하나봐요.”

“그러니깐 말이야. 내 사건도 원래 집행유예 할 건이었는데 마치 막판에 친한 변호사 선임되어서 그렇게 된 것처럼 밖에서는 생각할 거 아냐. 그럴 돈 있으면 피해 변제나 더 하지. 참나. 그러면 안 되는데 괜히 기록을 다시 한번 구석구석 살펴보게 되더라니까? 집행유예 결론이 정확한 거였는지 확인해보려고.”

“그래도 역차별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당사자야 살기 위한 본능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건데.”

“물론 임 판사 말이 맞지. 오해받기 싫다고 더 엄하게 하면 그것도 불공정한 거지. 원래 결론대로 집행유예 했어.”

“피고인은 막판에 선임한 변호사 덕에 풀려났다고 철석같이 믿겠는데요?”

“연결해 준 브로커가 생색깨나 내겠지. 거봐라 하면서. 나는 전관 약발 잘 받는 판사로 서초동 바닥에 소문나고.”

“에유 형도 엄살이 심해. 이 한 건으로 그럴 리가요.”

“기분이 그렇다 그거지 뭐. 재판에서는 공정성 자체보다 공정하게 보이는 외관이 더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 난 정년까지 판사 할 건데 괜한 오해 받을 일이 생기고 하는 게 싫은 건 어쩔 수 없지. 엄동설한이라는 변호사 시장에 나갈 생각도 없고, 공무원 월급에 감사하며 살고 싶은데 말이야.”

“그런데 밖에서는 왜 아직도 전관 효험이 있다고 확신하는 걸까요? 큰돈을 써가며.”

“녹용이나 해구신은 현대의학으로 효험이 입증되어서 비싼 것이었겠어? 어차피 재판 결론에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데이터로 검증이 되는 게 아니잖아. 자기가 질 만해서 졌다고 납득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다른 이유가 작용했다고 믿는 것이 훨씬 받아들이기 쉽겠지. 학원이 좋아서 명문대에 가는 건지 원래 갈 만한 애들이라서 가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밑져야 본전이니 비싸도 유명 학원에 가려는 심리 같은 거 아닐까. 게다가 사건이 몰리는 전관 변호사는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골라서 맡을 수 있으니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고.”

“요즘은 그렇지도 않대요. 이제 예전처럼 세상이 어수룩하지 않아서 옛날에 속칭 ‘나이롱뽕’이라 부르던 뻔히 이길 사건은 비싼 돈 주고 변호사 선임하지 않고, 정말 어려운 사건만 선임한다고 하던데요?”

“이런 얘기도 결국 우리끼리의 아전인수인지도 몰라요. 과연 세상 사람들이 전부 바보여서 헛돈을 허황되게 쓰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를 누군가 제공해왔기에 그렇게들 믿는 것 아닐까요? 사과 상자에 든 사과 중 단 한 개가 썩었어도 그 상자는 썩은 사과가 든 상자니까요. 게다가 실체가 있든 없든 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편승해서 큰돈을 번 사람들 역시 변호사 되기 전에는 판사고 검사였잖아요.”

“….”

여자 판사 늘어나니 골치아파?

-서초동 대지 다방

“큰소리치더니 결국 졌잖아! 당신들 모두 사기로 고발할 거야!”

“사장님, 이거 놓고 이성적으로 좀 얘기합시다.”

“뭐야 임마!”

“막말하지 마세요! 자자, 좀 차분히 앉아서 얘기를 들어봐요. 우리는 우리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방은 대기업 아닙니까. 우리나라 5대 로펌을 썼잖아요. 그 로펌에는 바로 여기 법원장 출신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친분 있는 변호사 라인으로 밀었는데, 그쪽은 위 라인으로 조진 거지. 사장님이 돈만 더 썼으면 우리도 법원장 출신을 추가 선임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안 하셨잖아요. 이건 정정당당한 싸움에서 무기 부족으로 진 거라고요.”

“…….”

“이판사판인데 딸라 빚을 내서라도 항소심에서는 더 높은 고위직 출신으로 선임하시죠. 법조계 인맥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다니까.”

-잠시 후 서초동 대지 다방

“형님, 아까 떽떽거리던 사장님은 잘 구슬려 보내셨수?”

“그럼. 이 장사 하루이틀 해?”

“저는 이번에 여자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 하나 소개했다가 고객이 덜컥 법정구속되는 바람에 아줌마한테 멱살 잡히고 머리털 뽑히고 봉변을 치렀잖아요. 여자 판사가 늘어나니 골치 아파요. 술 먹고 골프 친다는 명목으로 비용 청구하기도 애매하고.”

“웃기고 있네. 여자라고 뭐 다를 것 같아? 우리 애 담임 아줌마가 그리 애를 구박하더니 애 엄마가 선물 사들고 한번 다녀온 후론 햇살같이 따듯해지더만. 품목과 종목이 바뀔 뿐이야. 인간 속성은 다 거기서 거기라구.”

“요즘은 분위기가 갈수록 까칠해져서 힘들긴 해요.”

“걱정 마. 알아서 사고 쳐주는 판사 검사가 해마다 한두명씩은 신문 방송을 장식해주시잖아? 판사 검사 구분할 줄 아는 사람도 얼마 없어. 실제로 썩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썩은 것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한 거지.”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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