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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29 18:46 수정 : 2016.01.30 16:56

gomnme@naver.com

[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17) 술 권하는 사회(하)

(지난주 내용 요약: 동네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여주인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쳐 전치 3주 진단을 받게 한 전과 26범의 ‘주폭’ 노인.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해주자는 재판장과 엄정하게 처벌하자는 임바른 판사의 의견이 대립하는데….)

폭력 전과 26범의 ‘주폭’ 노인은 의외로 왜소해서 죄수복이 헐렁해 보였다. 재판장인 한세상 부장이 한마디 할 때마다 죽을죄를 지었다며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고 있는 이 노인이 동네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한 부장이 피해자와 합의할 시간이 필요한지 묻자, 노인은 가진 것도 없고 밖에서 일을 봐줄 사람도 없어서 합의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국선변호인도 피고인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변론을 하지 못했다.

재판 후 한 부장은 더욱 마음이 약해진 눈치다. 점심식사 때도 노인의 범행이 전형적인 강도상해라기보다는 취한 상태에서 행패 부린 것에 가깝지 않으냐는 말을 꺼냈다. 임 판사는 이런 한 부장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전과 26범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관용을 베풀겠다는 건가. 그것 또한 법관의 권한을 남용하는 것 아닌가. 법이 무겁게 처벌하라고 정했으면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의무 아닌가. 기록을 넘기는 소리가 거칠어졌다.

기록에 조각조각 나타나는 노인의 삶은 전형적이었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술에 절어 사는 폭력적인 아버지, 남편의 구타를 못 견디고 가출한 어머니, 가난 때문에 일찍 그만둔 학교, 일찍부터 시작된 소소한 폭력 및 절도 전과들, 배운 것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으로 살아온 나날들. 임 판사는 자신이 이런 스토리에 얼마나 무덤덤해졌는지 문득 깨닫고는 흠칫 놀랐다. 불과 몇 년 전 사법연수생 시절 검찰 시보 때에는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어이없는 죽음

오토바이를 훔친 소년을 조사하고 있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진 그는 지도 검사에게 가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자고 주장하면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다시피 했던 소년의 어린 시절, 비참한 가난, 일찍 돌아가신 모친과 알코올 중독인 부친, 친척들의 외면과 냉대를 열띤 목소리로 한참 이야기했다. 조용히 듣던 검사는 어느 순간 말허리를 자르고는 말했다. “임 시보, 지금 이야기한 그 모든 이유 때문에 더더욱 걔를 구속해야 하는 거야. 도주 우려 높고 재범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는 얘기니까.”

임 판사는 그 말에 충격받던 자신을 떠올렸다. 지금의 그는 그때의 지도 검사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자신과도 같지 않았다.

옆자리에서 자기 주심 사건들을 검토하던 박차오름 판사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어쩌면 이렇게 어이없이 사람이 죽을 수 있죠?” 초임 판사인 그녀는 아직 사건들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보다. 임 판사는 박 판사가 보던 사건 기록을 넘겨보았다. 아파트 안에 있는 조그만 정자에서 대낮부터 ‘깡소주’를 마시던 50대 남자 세 명이 다툼을 벌였다. 체구가 가장 작은 사내가 만취해서 바지에 소변을 보자 나머지 두 사람이 더럽고 냄새난다며 면박을 주다가 머리를 쥐어박기 시작한 것이다. 체구가 작은 사내가 횡설수설하며 소리를 지르자 덩치 큰 사내는 작은 사내의 머리를 붙잡고 시멘트로 된 정자 바닥에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내리찧었다. 작은 사내가 입가에 침을 흘리며 조용해지자 취한 두 사내는 이제야 조용해졌다며 남은 소주를 마저 마시고는 자리를 떴다. 작은 사내는 다음날까지 엎드린 자세로 정자 바닥에 있었지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동네길래…’ 하는 생각이 들어 아파트 이름을 다시 보니 낯이 익었다. 전과 26범 노인이 사는 아파트다.

이야기를 들은 박 판사는 갑자기 그 아파트에 한번 가보자고 난리였다. 임 판사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따라나섰다. 박 판사는 혼자라도 갈 기세였는데, 그녀를 혼자 그 동네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도착한 동네는 낯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훨씬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닫곤 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평소 생각도 안 해본 곳이란 결국 나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같은 서울이지만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 평행우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너저분한 쓰레기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길을 따라 걸으니 육교가 나왔다. 육교 밑에는 종이박스와 비닐로 얼기설기 몸을 웅크릴 곳을 만들어놓은 노숙인들이 여럿 누워 있었다. 노숙인과 눈이 마주치자 임 판사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육교를 건너자 낡디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예전에 건설된 영구임대아파트다.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장애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낡고 작은 아파트지만, 노숙인들에게는 꿈의 궁전일 것이다. 입주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사건 기록에서 봤던 정자였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팔각정 모양인데 기와가 다 벗겨져서 흉물스럽다. 정자에는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옆에는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확실히 이 정자는 취한 사람이 종일 엎드려 있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임 판사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자꾸만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임 판사는 냄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코가 아니라 머리가 느끼고 있는 그것은, 빈곤의 냄새였다.

소주병으로 여주인 머리 내리친
전과26범 노인이 사는 아파트
버스와 전철 갈아타고 가보니
가슴 답답해지고 머리 아파왔다
퀴퀴한 빈곤의 냄새 때문이었다

선고 앞두고 고민, 고민하다
심신미약 감경 없이 징역 3년6월
그런데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허리 굽히며 인사하는 노인
임 판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악이라기보다 나약함인가

임 판사는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면서 성장했다. 셋집을 전전하느라 전학생으로 사는 데 익숙했기에 친구 사귀는 것에 서툴렀다. 어차피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 누군가와 친해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집에 빚이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존재는 소년을 일찍 철들게 만들었다. 낡은 옷, 낡은 운동화, 모든 낡은 것에 익숙해지도록 스스로를 진화시킨 그가 유일하게 상처를 받은 일이 있다. 중3 때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곁에서 물끄러미 보더니 뜬금없이 이런 말을 던진 것이다.

“바른아, 너희 집은 가난하니까 너는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녀석의 집에는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놀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잔디밭이 있었다. 임 판사가 그때 상처받은 이유는, 비록 녀석의 말은 철없고 어리석었지만 나름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철없는 선의는 진실에 가깝기에 비수가 되었다.

어린 시절, 그는 가난 자체보다 가난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더 애써 숨기려고 했었다. 그게 더 부끄럽다는 것을 알 만큼은 조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동네에 서니 진짜 가난 앞에는 그런 자격지심이나 부끄러움 따위도 한낱 사치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내에는 온통 노인들만 눈에 띄었다. 부지런한 박 판사는 어느새 한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젊은이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인 듯한 할머니는 신이 나서 이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을 때부터의 역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점점 한숨이 섞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역사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숨진 채 며칠이 지나서 발견된 독거노인, 장애 있는 자식을 두고 투신자살한 노인. 그중에는 늙은 아들이 만취해서 쌈질하고는 벌금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러 감옥에 간 사이에 목을 맨 95세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 늙은 아들은 지금도 사고 쳐서 재판받고 있고 말이다.

두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파트를 나왔다. 낯익은 상호의 허름한 식당이 눈에 띄었다. 피해자의 식당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에 붕대를 감은 작은 몸집의 아주머니가 열심히 그릇을 닦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닦아도 빛이 날 것 같지는 않은 그릇이었지만. 식당 안에는 노인이 난동을 부린 흔적이 가득했다. 망가진 탁자와 의자들, 깨진 거울.

두 사람을 기자쯤으로 생각했는지 근처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깡패 노인네 사건 때문에 왔느냐며.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전취식이나 좀도둑질 정도가 고작이던 노인의 행패는 언제부터인지 점점 심해졌다. 술을 달라, 용돈을 달라고 동네 상인들에게 떼를 쓰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병을 깨거나 칼로 자해를 하니 무서워서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것도 힘들게 장사하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만을 골라서. 참다참다 경찰에 신고했더니 고작 몇 달 감옥에 갔다 돌아와서는 신고한 년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허리춤에 차고 돌아다녀서 공포의 도가니였다는 것이다. 이사 갈 돈도 없고, 앉아서 굶어죽을 수도 없으니 가게에 나와 앉아는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다들 목숨 걸고 장사하고 있었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 끝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길었다. 임 판사는 혼란스러웠다. 취하기라도 해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노인의 행동은 악이라기보다 나약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강인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 그런데, 그 나약함과 강인함조차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과학은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유전자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인구의 2% 정도는 유전적 변이로 인해 뇌 속 세로토닌 조절 실패로 음주 후 폭력 성향을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지? 무엇이 ‘행위’고? 그리고 ‘자유’란 놈은 또 뭐고. 자유의지를 전제로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판사의 일이란 실은 다 허깨비짓 같은 것은 아닐까.

박 판사는 선고를 앞두고 며칠째 기록을 다시 넘기며 고민하는 임 판사를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임 판사는 검찰에 치료감호를 청구하라고 할까도 고민해보았지만, 예산 부족으로 겨우 열 명 남짓의 의사가 1200여 명의 정신장애인을 담당하고 있고, 방호인력도 부족해 탈주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심신미약 감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인에게는 징역 3년 6월이 선고되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이 정도의 강도상해죄에 대해 보통 선고되는 가장 일반적인 형량일 뿐, 전혀 선처해 준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검사가 주폭 엄단을 강조하며 징역 5년을 구형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도관에게 끌려나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며 임 판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날 저녁, 형사재판부들끼리의 회식이 있었다. 임 판사는 평소 딱 잘라 거절하던 폭탄주를 받아 마셨다. 한 잔, 두 잔, 세 잔. 박 판사가 놀라서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화장실에서 변기를 끌어안고 쓰디쓴 위액까지 토하던 것이 임 판사가 기억하는 마지막 토막이다.

지금 임 판사는 꿈속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꿈. 왼쪽 뺨에 따뜻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영원히 이 꿈 속에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뭔가 덜컹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지하철 안이었다. 한밤의 한적한 지하철. 그리고 그는 박 판사의 무릎에 머리를 누인 채 어린애처럼 옆으로 누워 있었던 것이다. 놀라서 억지로 일어나려는 그를 박 판사가 제지했다. 괜찮으니 그냥 있으라고. 더 자라고. 임 판사는 그 말에 최면에라도 걸린 듯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조심스레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일어나니 집 근처 역이었다. 임 판사는 부끄럽고 면목이 없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이제 알아서 가겠다고 되뇌었지만 박 판사는 고집스럽게 그를 부축했다. 임 판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이렇게 폐 끼치면 안 되는데.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자꾸 비틀거릴 뿐인 그를 팔을 뻗어 감싸며 박 판사가 말했다. 괜찮다고. 가끔은 폐 좀 끼쳐도 괜찮다고.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저자. 원래 ‘우리 이웃의 분쟁’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에 관해 쓰려다가 사생활 보호 문제 때문에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간사 갖가지 분쟁과, 이를 법정에서 중재하고 판결하는 판사들 내부의 풍경을 그린다. 소설은 처음 써보는 거라 떨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조로 삼는 열혈 정의파 초임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초보인 작가만큼이나 소설 속의 미숙한 그녀를 응원해주시길.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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