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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재소설] 문유석의 미스 함무라비
(18) 마지막 재판 ①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 맞은 새해는 혹독했다.
살을 에는 칼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으로 출근해서 판사실에 들어서니, 임바른 판사가 소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굵은 글씨인 기사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준강간으로 법정구속된 A대 교수, 구치소에서 자살 시도’
임 판사는 놀란 박 판사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박 판사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만취 상태의 대학원생 제자를 여관으로 데려가 준강간한 사건의 피고인인 교수가 옥중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박 판사가 주심이었던 사건이다.
교수는 법정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이며 식사를 거부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던 중 쓰러져 병사로 옮겨진 상태였다. 구치소 측은 병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안정을 취하도록 조치했는데, 교수가 러닝셔츠를 찢어 만든 끈으로 병실 내 선풍기 걸이에 목을 맨 것이다. 순찰 근무자가 발견하여 응급조치를 취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고 있지만 위독한 상태다. 항소심 첫 공판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편향된 시각 가진 판사가 예단으로…”
박 판사의 뇌리에는 징역 4년에 처하고 법정구속한다는 한세상 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던 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지켜보는 피해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 심장을 조여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되살아났다. 신문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증거와 법에 따라 최선을 다해 판단한 거잖아요. 그리고 자살 시도가 피고인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학재단 이사장 아들에 교수로 평생 아쉬운 것 없이 살아온 사람이 제자 준강간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빠지지 않겠어요? 그런 부분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거죠.”
임 판사는 열심히 위로하려 들었지만, 일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교수는 고비를 넘겨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번에는 교수의 항소심 변호인이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공판을 앞둔 변호인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국민 여러분! 편향된 시각을 가진 판사가 예단을 가지고 증인을 위증죄로 협박하며 미리 정해진 결론으로 몰아가서 존경받는 교육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건입니다. 항소심에서 반드시 정의가 살아 있음을 밝히고 말겠습니다!”
A대 재단 측이 새로 선임한 항소심 변호인은 마치 선거 유세장인 듯 팔을 휘두르며 목청을 높였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변호사다. 카톡으로 가슴털 사진을 보낸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대리인이기도 했다. 분명 그 사건 의뢰인 부인이 강제추행으로 고소한다고 했었는데, 수완 좋게도 위기를 넘긴 모양이다.
변호인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해 보였다. 박 판사가 위증죄에 관해 경고하며 증인의 수상한 행동 및 의심되는 점을 추궁한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재판 진행이다. 하지만 변호인은 자꾸 모든 것에 ‘이례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의혹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초임 배석 판사가 재판장을 제쳐 놓고 증인 신문에 나서는 건 이례적이다(박 판사는 소송법에 따라 재판장에게 알리고 신문했다),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증인은 재단 비리를 주장하는 집회에 앞장서던 극렬 운동권인데, 이런 편향된 증인의 말을 결정적 증거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다(이 증언은 당시 1심 변호인에 의해 효과적으로 탄핵되어 재판부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되지 못했다), 설령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폭력이 행사되지도 않은 준강간 사건인데 피해자를 위해 3천만원이나 공탁한 점을 전혀 참작하지 않고 징역 4년이라는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이례적이다(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이상 일방적인 공탁은 의미가 없다고 봤을 뿐이다).
처음에는 자살 시도로 인한 동정적인 분위기를 틈탄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보였지만, 상황은 바뀌어 갔다. 변호인이 한 부장이 아니라 박 판사를 타깃으로 삼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박 판사는 여러모로 ‘이례적인’ 판사였던 것이다.
‘미스 함무라비’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B신문이었다. B신문은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변호인의 기자회견 내용을 다룬 후,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박 판사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sns에서는 이미 스타’, ‘지하철 성추행범과 직접 몸싸움 벌여’, ‘초미니 차림으로 출근하여 법원 발칵’, ‘고속도로 출구를 막고 다른 차량과 시비’ 등의 내용에 이어 ‘당시 성추행범으로 몰렸던 교수 억울함을 토로’라는 짧은 인터뷰, ‘튀는 판사가 사법 신뢰에 미치는 악영향’, ‘사회 전반에 만연한 남성 혐오 풍조 우려’ 등 훈계조의 기사가 이어졌다.
다음날부터 B신문 경제면에 ‘세계로 웅비하는 A대학교’라는 전면 광고가 연일 실리기 시작한 것과 B신문 사주의 손자가 A대학교에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대학원생 제자 모텔로 데려가준강간한 사건의 피고인 교수
옥중서 자살 시도했다는 보도 뒤
변호인측이 주심 박 판사를 향해
근거없는 의혹제기를 시작하고 ‘미니스커트 입는 튀는 판사’
SNS상에서 먹잇감 된 박 판사
댓글난은 온통 사법부 성토장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한
피해 여성은 진술 번복하는데… #남혐 판사, #메갈 판사, #튀는 판사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인 것은 결국 사진이었다. B신문 기사 인터넷판은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와 아찔한 스틸레토힐 차림 박 판사 뒷모습 사진을 내걸고 있었기에 모든 포털에서 대문에 걸린 채 놀라운 조회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바쁜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깨알 같은 글씨까지 일일이 읽을 시간은 없었다. 사진과 ‘판사’라는 직함의 언밸런스함이 먼저 눈길을 끌었고, 이후 엄지로 휙휙 내린 화면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결국 몇 가지 강렬한 키워드뿐이었다. ‘피고인 자살 시도’, ‘남성 혐오’, ‘행동파 여판사’, ‘몸싸움’. 그리고 그 몇 가지 키워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매우 논리적이고 연관성 있어 보이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는 원래 그렇게 작동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변호인 기자회견 때 부족해 보이던 의혹 제기의 근거는 이제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임 판사는 박 판사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서 무엇보다 이미지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 미니스커트는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한 부장의 말에 반발한 박 판사가 작심하고 입고 출근한 것이었다. 법원 공익근무요원이 그 모습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린 후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에도 그 사진이 없었다면 그렇게 요란한 관심을 끌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어차피 정의보다 섹시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때에는 지하철 성추행범 니킥 동영상과 함께 #정의의 여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미스 함무라비 등의 해시태그를 붙여서 슈퍼히어로 취급을 하며 낄낄대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B신문 기사 링크와 함께 #남혐 판사, #메갈 판사, #튀는 판사를 열심히 붙이고 있었다. 신문 기사 댓글난은 사법부 성토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평소 쌓여 있는 불만과 증오가 쏟아져나오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젊고 경험 부족한 사람들에게 시험 한 방으로 무거운 책임을 맡겨 온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 이어졌다. 사진에 나타난 뒤태를 품평하며 킥킥대는 목소리 역시 함께 이어졌고. 박 판사를 변호하고 싶었던 한 유명 지식인이 박 판사를 기득권의 성채에 용기 있게 맞선 잔 다르크로 오버해서 묘사하자 불씨는 엉뚱한 곳으로도 번지기 시작했다. ‘박차오름 고향’, ‘박차오름 정치성향’, ‘박차오름 운동권’ 등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 지식인은 잔 다르크는 개선할 때 못지않은 환호를 화형당할 때에도 들어야 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나 보다. 박 판사의 출근길은 갈수록 불편해졌다.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눈길이 쏟아졌을 뿐 아니라, 법원 정문에 박 판사의 이름을 내건 일인시위 피켓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에 자취하는 여대생 월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서 소송을 당했던 노인이다. 당시 박 판사가 조정 과정에서 여자 편을 들어 자기를 모함했다며 며칠 시위를 벌이다 말았던 노인인데, 이번 일로 박 판사가 유명해지자 다시 법원 정문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노인에게는 여러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가 풍성하게 생겼다. 여기까지가 자살 시도로부터 항소심 첫 공판까지 2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 와중에도 한 부장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무뚝뚝하게 진행할 사건 얘기만 했고, 박 판사와 임 판사도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고, 일단 사건이 1심 재판부의 손을 떠나 항소심으로 간 이상 진실을 가릴 법정은 항소심의 것이기 때문이다. 항소심 첫 공판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몸무게가 한참 빠진 듯하고, 목에 상처 자국이 뚜렷한 교수는 죄수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변호인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법정을 휘저었다. 이례적인 것은, 첫 공판을 마치며 재판장이 남긴 말이었다. ‘본 재판부는 그 어떤 예단이나 치우침 없이, 공평무사하게 재판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옳은 말이었지만, 그 당연한 말을 굳이 덧붙임으로써, 그리고 ‘본 재판부는’이라는 주어와 조사의 결합으로, 법정에 가득한 취재진에게 1심 재판은 그러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고, 이는 곧 기사에 반영되었다. 기사에 나온 항소심 재판장의 이름은 ‘성공충’이었다. 이제 법원 구내에서도 박 판사를 힐끔거리는 눈길과 수군대는 소리가 늘기 시작했다. 옆방 정보왕 판사는 자기도 바쁠 텐데 틈만 나면 놀러 와서 평소와 다름없는 썰렁한 농담을 늘어놓곤 했다. 임 판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인간은 공부는 잘했지만 누구를 위로한다든지 하는 종류의 일에는 별로 재능이 없어. 나랑 마찬가지로.’ 그런데 정 판사조차 태연한 얼굴로 놀러 올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항소심 제2차 공판 기일에 출석한 피해 여학생이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국민참여재판 신청과 비참한 기분 휠체어에 앉은 초췌한 교수를 뒤로한 채, 피의자 취조하듯 공세적인 변호인의 증인 신문이 이어지자 여학생은 울음을 터뜨리며 사건 당시 술에 많이 취해 있기는 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식집에서 폭탄주를 많이 마셔서 화장실에서 토한 후 잠시 쓰러져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러고 나자 정신이 조금 났다는 것이다. 교수가 평소 자신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일식집을 나선 후 취한 교수가 자꾸 여관 쪽으로 이끌자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꼈지만, 술김에 눈 딱 감고 교수의 요구에 응하면 유학 문제, 장학금 문제 등 평소 절박하게 고민하던 문제들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유혹도 느낀 것이 사실이어서 망설이다가 어느새 여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동기 여학생이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학교에 소문을 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고 말이다. 여학생은 눈물범벅이 된 채 변호인의 꼬리를 잇는 집요한 추궁에 차례로 수긍하는 방식으로 1심에서의 모든 진술을 번복했다. 학교에 소문이 나고 남자친구까지 알게 되자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정신을 잃은 상태여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한 것뿐인데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서 돌이킬 수가 없었다. 교수님이 옥중에서 자살하려 했고 중태라는 뉴스를 본 후 하루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무고죄든 위증죄든 달게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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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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