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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포>의 첫 버전이 보고 싶다. 천재 감독 조시 트랭크의 만에 하나라도 남은 가능성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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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판타스틱 포’
<판타스틱 포>는 망했다. 조시 트랭크도 망했다. 이 영화에 참여한 모두가 망했다. 감독 조시 트랭크가 리부트한 <판타스틱 포>는 개봉하자마자 비평가들에게 난도질을 당했다. 관객들은 아예 보러 가길 거부했는데, 처음 보러 간 사람들이 이 영화에 독침을 쏘아붙였던 덕이다. 부당하냐고? 아니. 그래도 싸다. <판타스틱 포>는 2015년 비평가들과 관객들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현란하고 찬란한 독설을 모조리 들이부어서 사망시킨 뒤 시멘트를 부어서 굳힌 다음 동상으로 만들어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전시를 한 뒤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쪽지를 붙여서 타임캡슐에 넣어 자자손손 인류의 미래를 위해 보관해야 한다. 그렇다. 그 정도로 나쁘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나는 조시 트랭크라는 감독에게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의 데뷔작인 <크로니클>은 <클로버필드>나 <블레어 윗치> 같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진짜로 찍힌 다큐멘터리를 뒤늦게 발견해서 소개하는 형식을 가진 가짜 다큐멘터리 장르)의 형식을 지금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슈퍼히어로물과 접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실험해본 훌륭한 소품이었다. 지금의 할리우드 시스템은 젊고 재능있는 감독이 자신의 비전을 당차게 밀어붙여 영화를 만드는 걸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계획되고 검증되어 마모된 채 시장에 나온다. 1200만달러짜리 저예산 장르영화가 스튜디오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세상에 나와 관객과 평론가들을 동시에 매혹시키는 일은 그리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조시 트랭크의 <크로니클>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물여덟살에 <조스>를 만들었을 때, 제임스 캐머런이 서른살에 <터미네이터>를 만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조시 트랭크 역시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하지만 <판타스틱 포>로 조시 트랭크는 끝났다. 영화 한 편으로 의기양양한 신인의 커리어가 망가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지 않냐고? 아니, 조시 트랭크는 정말로 망했다. 왜냐면 싸우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트위터에 “일년 전, 나는 이 영화의 판타스틱한 버전을 갖고 있었다. 훨씬 좋은 리뷰를 받았을 버전을. 하지만 당신들은 그 버전을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라며 제작사인 20세기폭스에 책임을 돌리는 글을 남겼고, 곧 지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샷으로 캡처되어 에스엔에스(SNS) 세상을 휩쓸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세기폭스는 조시 트랭크의 영화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촬영을 시키고 재편집을 시켜 2시간20분짜리 영화를 1시간30분으로 만들었다. 역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클라이맥스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조시 트랭크의 첫번째 버전은 ‘크로니클 2’라는 제목이 붙어도 좋을 정도로 어두운 성장영화였다는 소문도 있다(이 모든 게 왜 소문이냐면, 제작사도 배우도 감독도 더이상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재촬영과 편집을 거쳐 나온 결과물은 우리가 본 그대로다. 조시 트랭크는 원래 <스타워즈>의 차기작 감독으로도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판타스틱 포> 사태로 인해 하차했다. 거대한 제작사가 넓은 마음으로 그를 다시 품어주기로 어렵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이상, 이 친구의 미래는 없다.
조시 트랭크는 철이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온 영화다. 참여한 스태프 수백명의 명예가 달린 영화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책임을 제작사에 돌렸다. 자신은 어떠한 책임도 없는 양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조시 트랭크가 왜 그렇게 철없이 되바라진 반항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젊고 의기양양하고 재능있는 어린 감독이 자신의 버전대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다가 결국 거대한 스튜디오의 결정에 굴복한 채 새로 카메라를 들고 원하지 않는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을. 그리고 이미 찍어둔 장면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스튜디오의 방침대로 편집을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말이다. 물론이다. 이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시 트랭크는 자기 능력보다 과한 영화를 탐했던 그다지 능력이 없는 꼬맹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20세기폭스의 임원들로 하여금 ‘이건 절대 시장에 팔아먹을 수 없는 물건이야’라며 고개를 젓게 만들었을 법한 <판타스틱 포>의 첫번째 버전이 정말이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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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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