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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광에 아무런 긍정적 효과를 주지 못하겠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장면들이 정말이지 마음에 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통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목격하는 일이 언제 또 벌어지겠는가.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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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뒤늦게 봤다. 나는 마블의 대단한 열성팬임에도 불구하고 ‘어벤져스’ 시리즈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 마블 모둠 영화에는 한가지 커다란 결점이 있다. 슈퍼히어로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와 ‘아이언맨’의 개별 영화들을 매우 좋아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는 히어로 영화의 한계를 넘어선 대단한 걸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이 모였을 때 벌어진다. 각각의 슈퍼히어로가 가진 캐릭터와 능력을 어떻게든 2시간30분짜리 영화 속에 골고루 버무려 넣으려고 하다 보면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각 캐릭터의 매력도 휘발된다. 그놈의 균형감각이 모든 것을 망치는 셈인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고색창연한 격언은 ‘어벤져스’ 시리즈에 매우 어울린다.
이 시리즈에 큰 기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꽤 기대했다. 대체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가 서울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2주간 촬영을 했다. 당시의 거의 신경질적인 미디어 신드롬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서울을 알리는 광고효과가 800억원이 넘는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든 경제효과로 환산하는 한국 언론의 탁월한 계산정신이 빛을 발했는데, 나로서는 그 이야기에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거대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무대로 활용되는 이국적인 도시에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하이 시내에서 톰 크루즈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고, 트랜스포머들이 불꽃을 튀기며 싸워도 당신은 다음날 상하이행 항공권을 끊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건 ‘도시’의 매력을 섬세하게 살려낼 법한 작은 영화 촬영을 유치하는 것이다. 나는 서울시가 오히려 접촉해야 할 사람은 우디 앨런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미국에서 투자를 받는 게 힘들어진 우디 앨런은 10여년 전부터 유럽의 각 도시로부터 공공기금을 지원받아 그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찍었고, 파리에서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들었고, 로마에서는 <로마 위드 러브>를 촬영했다. 그리고 각각의 영화는 최근 할리우드 영화 중 각 유럽 도시를 가장 로맨틱한 휴가 목적지로 가공한, 놀라울 정도로 노골적인 ‘관광 영화’였다.
그런데 막상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 놀라운 할리우드 재간둥이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진수를 영화 속에 너무나도 정확하게 살려낸 덕이었다. 몇몇 거대한 액션은 마포대로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지역에서 진행이 됐는데, 그저 번드르르한 유리 빌딩을 화려하게 박살내기 위한 로케이션이 아니었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와 울트론은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가 가득한 시장 골목과 우중충한 문래동 상가지역과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야 봐주기 힘든 한강 고가 사이에서 이리 엉키고 저리 엉켰다. 심지어 날씨 또한 전형적인 서울의 여름 하늘로,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스크린을 누렇게 착색했다. 모든 것은 전혀 할리우드 방식으로 포장되지 않은 서울 그 자체였다. 800억원의 홍보효과는 무슨.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 관광에 거의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도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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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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