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01 18:49 수정 : 2016.04.02 10:27

영화 <독수리 에디>를 볼 때 스키점프 선수 에디를 응원했던 것처럼, 나는 <프로듀스 101>의 소혜를 응원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복잡하다. 영화 <독수리 에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독수리 에디

당신은 당신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안다. 주변 사람들도 안다. 그러나 당신은 도전하고 싶다. 재능이 부족한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굴의 의지만큼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되든 안 되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고 싶다. 자, 여기서 질문. 우리는 당신을 말려야 할 것인가?

<독수리 에디>는 바로 그 패러독스에 관한 이야기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은 두 스타를 낳았다. 하나는 자메이카에서 온 봅슬레이 팀,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온 스키점프 선수였다. 눈이 없는 나라에서 온 봅슬레이 팀의 이야기는 이후 <쿨 러닝>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국 출신 스키점프 선수의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게 바로 갓 개봉한 <독수리 에디>다.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영국에서 온 스키점프 선수가 뭐 그렇게 색다른가? 사실, 조금 색다르긴 하다.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에디 에드워즈는 모든 경기에서 꼴등을 했다. 그는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아마추어를 가장한 프로들의 세계에 뛰어든 진짜 아마추어였다. 당시 영국 올림픽위원회는 스키점프를 공인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었던 에디는 턱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홀로 스키점프를 배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국지적인 대회에 참가해 최소한의 기록을 냄으로써 올림픽 출전권을 얻어냈다. 당연히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꼴등을 하고도 카메라 앞에서 좋아서 춤을 추고 날갯짓을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매료됐다. 그에게는 곧 ‘독수리 에디’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캘거리 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됐다. 사람들은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상징으로 그를 칭송했다. 그럼에도 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경기마다 에디 같은 친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걸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위원회는 이후 스키점프 출전 자격을 강화했다. 에디 정도의 성적으로는 아예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심지어 올림픽위원회는 강화된 법을 ‘독수리 에디 법’이라고 불렀다.

에디 에드워즈는 이후 두 번이나 더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위원회가 일부러 막아서가 아니라, 아무리 스폰서를 획득해 연습을 해도 기량이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독수리 에디>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말한다. “스키점프 선수들은 네 살부터 시작해. 니가 그걸 해내겠다고?” 그런 말을 하는 기존 스키점프 선수들을 영화는 악역으로 희화화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라도 그런 말을 했을 테니까.

나는 <독수리 에디>를 보면서 11명의 소녀에게 투표해 국민 걸그룹을 만든다는 리얼리티쇼 <프로듀스 101>을 필연적으로 떠올렸다. 거기에는 소혜라는 소녀가 나온다. 그녀는 재능이 없다. 노래도 엉망이고 춤은 더 엉망이다. 모든 것을 타고난 소녀들 사이에서 그녀는 도태되어야 마땅한 존재다. 하지만 소혜는 주변 연습생들의 도움으로 매번 생방송 무대를 어떻게든 해낸다. 그리고 점점 춤 실력이 상승한다.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투표를 하고, 이제 소혜는 <프로듀스 101> 최고의 인기 멤버 중 하나다. 그런데 나는 종종 떨어지는 다른 소녀들의 얼굴을 보며 ‘이게 정말 합당한가?’라고 중얼거린다. 소녀들은 모두가 인생을 걸고 도전한다. 모두가 재능이 있다. 모두가 노력한다. 그러나 소혜라는 소녀는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는다. 마치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에디처럼 말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독수리 에디>를 본 알파인스키 선수를 며칠 전에 만났다. 그녀는 “에디 에드워즈가 환호를 받을 때 다른 선수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싫었을 거예요. 십수년을 연습해서 저 자리에 오르는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겨우 1년 연습한 친구에게만 쏟아지는데, 좋았을 리가 없죠.” 그럼에도 그녀는 <독수리 에디>가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독수리 에디>를 보며 에디를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재능 있는 소녀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소혜가 생방송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주먹을 꽉 쥐고 ‘실수하지 마라’고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김도훈의 불편(불평)한 영화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