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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4 19:30 수정 : 2017.11.24 19:37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촛불집회로 부패하고 타락한 정권을 교체한 시민의 힘을 기특하게 여기는 세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6월 시민항쟁을 흐뭇하고 느긋이 기억하곤 한다.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마침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이야기는 오늘의 대표적인 신화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묻는 일은 드물다. 6월 시민항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그 뒤를 이은 석달의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주장은 점차 흐릿해져가는 눈치이다. 6월항쟁만 남는다면 그 민주주의란 민주주의가 정착하도록 이끈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제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반성하는 목소리는 점차 듣기 어려워져가고 있다.

얼마 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홍대 앞의 어느 술집을 겸한 작은 공연장에서 몇명이 모였다. 오늘날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대할 때마다 항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김진숙씨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그녀는 거푸 물잔에 손을 뻗어 목을 축이며 카랑한 목소리로 파란만장한 삶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익숙한 이야기였음에도 다들 숨소리를 멈춘 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시종 숙연했다. 왜 아니겠는가.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나 젊음을 보내고 있는 대다수의 청중은 그녀가 증언한 고통과 투쟁의 이야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눈치였다. 모르긴 몰라도 왠지 모를 죄책감과 경외감이 들쑤셨을 것이다.

6월은 여전히 빛나지만 그 뒤를 이은 노동자 대투쟁이 빛이 바래게 되었다는 것은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가지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뜨거운 여름, 지게차를 앞세우고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은 이른바 직선제 쟁취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웠다. 6월항쟁은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은 자신들의 삶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리는 전환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의 핵심은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주체라는 점을 알린 데 있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얻었으니 이제 싸움은 끝났다는 이들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87년에 두 개의 민주주의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고 말해야 옳다.

민주주의란 것이 인권과 시민권에 따른 정치체제를 가리킨다면 이는 누구의 인권, 시민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고쳐 말하면 이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싸울 수 있어야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것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누군가의 삶을 분석하고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의 대변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고통받는 이들의 불행을 대신해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가 자신을 대표하겠다고 나설 때 가진 자들은 ‘혼란이다, 무질서다’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대의할 수 없음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물으며 민주주의가 민주화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말이다. 오늘날 노동자는 불행하게도 오직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고 싸우는 무시무시한 투사이기보다는 처량한 약자들의 명단 속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숨죽이는 것, 이런 게 민주주의의 역사 3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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