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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1 18:07 수정 : 2018.06.01 19:26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프로페소리아트

카를 마르크스가 누구인지는 설명을 생략한다. 몇주 전 그의 탄생일 200주년에 이런저런 기념까지 있었으니 이 글은 뒷북이다. 하지만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의 사망(1883년) 100주년 무렵부터 그의 탄생(1818년) 200주년 무렵까지는 나에게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여명과 황혼’의 시간으로 보인다. ‘황혼’이라는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사람들이 꽤 있겠지만, 올해 봄에 일어난 사건들은 나에게는 징후적이다.

지난 3월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윤소영 교수에 대해 한 신문의 기사가 나와 위안부에 대한 그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언론의 관심 대상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새로운 저작이 아니라 강의에서 했던 발언이라는 사실 자체가 불운하다. 다행히 기사가 ‘오보’로 판명되면서 큰 파문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주 전 다른 신문에 그의 인터뷰가 실리면서 그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화제가 되었다.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는 기사 제목은 언론의 선정적 헤드라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만 “마르크스 이론은 문제없”지만, “현실에 적용하겠다는 활동가들의 문제”라는 지적은 ‘문제적’이었다.

수년 동안 그와 맺었던 연이 끊긴 지 아주 오래지만, 나는 내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인간문화재처럼 남아 있기를 바랐다. 나처럼 귀가 얇은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 대해 과민했으니, 우직한 연구자 선배가 하나 있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2년 전쯤 그가 발간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 한국사회성격 논쟁 30주년>를 접한 뒤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선학 한 명을 ‘시골뜨기’, 후학 한 명을 ‘멍청이’라고 디스하면서 ‘나는 옳고, 너희들은 다 틀렸다’는 논조는 글 읽는 재미로 넘어갈 수 있었다. ‘(1960~70년대) 독재정권이 외채를 도입해 재벌을 육성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 연구자에게 갑작스럽게 독창성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으로 덮어두었다. 그런데 스스로를 ‘유가적 지식인의 후예’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가문에 대해 정황하게 이야기한 부분에서는 나의 인내가 부족했다. 페미니즘 이론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유가란 ‘남근의 역사’의 대표 격 아니던가.

그가 제시한 과학적 이론에 대한 나의 이해는 ‘남한 자본주의는 붕괴했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마르크스주의자도 뭣도 아니(라고 간주되)지만, 내가 아는 한 마르크스의 사유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자본주의가 어떤 주체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과학적 이론의 기본적 태도 아닐까. ‘노동자계급’이 무엇인지는 모호해지고 있어도, 파편화된 채로 도처에서 출현하는 잡다한 사람들의 잡다한 투쟁들은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실천들에 대한 관심이 마르크스주의 과학의 ‘충실한’ 공부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문득 작년 비행기 안에서 기내 서비스로 영화 <청년 마르크스>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듣보잡’ 독일인 마르크스가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런던에서 영어를 어설프게 구사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소통하는 장면들이었다. 혹시 한국 마르크스주의자의 불행은 국제적 고립 아니었을까. 경계를 넘어 몸으로 부딪히지 않고 책을 번역, 독해, 평주하던 시대의 황혼이 찾아오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왔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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