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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9 19:37 수정 : 2016.02.21 10:29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진돗개 ‘백두’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백두가 아저씨를 또 물었단다. 여성 보호자분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백두를 훈련소에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무는 것을 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에요.”

두 살이 된 백두는 한 살이 지날 무렵부터 함께 지내는 아저씨를 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일 따르고 좋아하던 사람이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아저씨가 자기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얼굴을 물고 손을 심하게 물고 싫어하는 것을 할 때에는 점점 다른 가족도 위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보호자는 힘들게 말을 꺼냈다. 사실 백두를 망친 건 아저씨라고.

아저씨, 즉 백두의 남성 보호자는 개를 처음 키우는 사람이었다. 처음 백두를 키우면서 들은 주위의 조언이 진도견이니까 주인보다 우위에 서지 않게 하라는 충고였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백두한테 ‘내가 너보다 더 세다’라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열을 알려주고자 했다. 군기가 바짝 든 신병 다루듯 백두와 잘 있다가 갑자기 툭 치고, 또 가만히 있다가 또 건드리는 식으로 시비를 걸면서 저항하면 초크체인으로 제압하며 복종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분이 이해하는 ‘개’는 아주 단순했다. 자신의 힘을 확인시키면 그다음은 따라올 거라는 논리였다. 사실 개의 서열관계에서는 ‘신뢰’가 제일 중요한데, 힘의 논리로 인해 결국 백두에게 아저씨는 믿을 수 있는 존재에서 가장 믿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개의 본성은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힘겨루기를 했다가 크게 실패한 셈이다.

가족들이 설명을 해도 아저씨는 자기를 우습게 봐서 그렇다고 화를 냈다. ‘개가 사람을 따라야지 왜 내가 개를 이해하고 따라야 하느냐’는 식이었다.

우리는 보호자가 백두의 신뢰를 잃은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설명했다. 개의 서열은 힘의 논리로 정립되는 게 아니라 신뢰와 존경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켰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이긴 했다. 백두와 함께 해야 할 일은 혼내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몸에 밴 두려움을 없애는 거였다. 몇 가지 행동을 바꾸기로 했다. 첫째, 잘해주다가 갑자기 툭툭 치는 일관되지 않은 행동으로 개에게 불안함을 주는 일을 중단했다. 둘째, 백두의 관찰일지를 쓰도록 했다. 아저씨는 개를 읽는 법이 필요했다. 백두가 좋아하는 음식과 놀이는 무엇인지, 칭찬을 했을 때 어떤 표정과 자세를 취하는지, 백두가 경계할 때는 어떤 표정인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상황별로 귀, 시선, 눈 크기, 입, 꼬리 위치와 움직임, 몸의 무게중심 등을 살피도록 했다.

셋째로, 하루에 3번, 5분씩 백두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 있을 때 아저씨는 백두와 눈이 마주치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던져주었다. 처음에는 아예 백두에게 접근을 안 했지만,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간식을 주었다. 일정 거리를 좁혔는데, 백두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시 뒤로 물러섰다. 매일 이런 시간을 15분, 20분까지 늘린 지 한 달이 지날 무렵부터 백두의 경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저씨는 신기해했다.

이런 관계는 드물지 않다. 상당수 남자들이 덩치가 큰 개를 다루면서 복종을 강요한다. ‘철들면서’ 보낸 학교나 군대에서 체벌과 복종은 당연시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길들여진 방식인 이런 복종훈련이 가장 쉽고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체벌로 복종을 강요하는 건 분명 우스운 방법이다.

사람들은 버릇이 없거나 공격적인 개를 ‘우위’(dominance)에 있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의 공격성의 대부분은 ‘두려움’이 원인이다. 자기를 위협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무는 것이라고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또 초크체인이나 체벌 같은 자극으로 두려움을 유발하면, 겉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행동은 잠깐 억누를 수 있지만 공격하려는 감정은 조절하지 못한다. 결국 갑자기 더 큰 공격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개에게만 사람을 이해하라고 할 순 없다. 사람의 기준이 아닌 개의 기준으로 이해해야 한다. 서로 믿고 따르는 ‘한 팀’이 되려면 사람이 개를 이해하는 게 사실 더 빠르다. 그런 배려가 놀랄 만큼 많은 것을 바꾼다. 우리 행동을 바꾸는 것으로 동물의 문제가 바뀐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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